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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ozminerva.egloos.com/5362451


놀러와, 세시봉, 송창식, 윤형주 버닝-인간들,예술작품

(아주 오랜만에 버닝 카테고리이다..)


1988년 MBC 음악방송. 트윈폴리오 해체후 19년이 지난 때. 윤형주와 송창식의 웨딩케익


MBC 놀러와 세시봉의 친구들을 다운 받아 보고 일주일을 기다려 2편까지 보고나서 도저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중간에 엠티도 다녀오고 회사에 출근도 했는데 계속 머릿속에서는 화음이 울리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었으나 어디에다 써야할지도 모르겠고, 가족카펠지, 매냐보드일지, 또 다른 곳일지 몰라서 그냥 블로그에라도 끄적거리기로 한다. 

나는 화음에 목이 말랐던 걸까. 근데 나만이 아닌것 같다.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니 나같은 사람이 수도 없다. 한국에선 항상 교회에서 또는 다른 곳에도 멜로디와 화음에는 젖어 있었는데 호주 생활이 오래될 수록 그런 것을 즐기기는 쉽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그게 나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었을까. 놀러와 게시판에서 처음으로 댓글단다고 토로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 잊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가 잊었던 것은 무엇일까.
 
가끔 음악이 그리워 해외동포 돈내고 티비보는데 들어가보면 음악프로그램은 가요무대와 뮤직뱅크 밖에 없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있긴 하지만 현재 가수 중에 서태지만 듣는 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오는 사람은 오히려 인디라 잘 모른다.
가요무대는 내 체질이 아니다. 나는 트로트 정서는 아닌 것이다. 음악뱅크도 아니다. 너무 많이들 나오는 그애들을 나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을 못한다.서태지라도 듣는 나도 이런데 그것도 안들을 대부분의 4-50대는 어떨것이냐. 인생에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예 없는 거다.
 
가요무대와 뮤직뱅크가 흡수하지 못할 그 수많은 사람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음악에 죽고 음악에 살던 10대를 누구나 거쳤을 텐데.

 

트윈폴리오는 나에게는 특별한 그룹이다. 송창식, 윤형주의 그룹이지만 사실은 구성가수의 이름은 특별히 기억 못했다. 단지 웨딩케익, 더욱더 사랑해는 항상 화음을 맞춰 친구들과 동생과 불렀었다. 중고등학교와 초기 대학교 때 감수성은 그 쪽이다. 조하문과 들국화도 좋았지만 트윈 폴리오는 만만했다. 기타도 연습하면 칠 수 있었고 화음도 넣기 쉬웠다.어쩌면 그건지도 모른다. 말하다가 바로 나오는 노래, 바로 코드를 맞추는 기타. 별다른 방송장비가 필요없는 음악. 그래서 누구나 부를 수 있었던 아날로그의 그 음악이 2010년에, 그리운 거다. 음악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처럼 기술이 발달해버린 지금. 노래방 기기가 없으면 가사도 기억못하는 지금.
 

트윈폴리오는 내가 태어나기전에도 해체했지만 그 역할은 새로운 음악을 들여오는 일이었던 것 같다. 외국의 팝송을 번안해 소개해 불렀으며 편곡은 가끔 원곡보다 나았다. 음악 듣기 힘든 젊은이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송창식의 발전은 눈이 부시다못해 뒤로 넘어갈 정도다. 가나다라마바사, 왜불러, 고래사냥, 선운사, 토함산, 딩동댕, 참새의 하루, 푸르른날...끝도 없는 이 히트곡들은 단지 히트곡일 뿐 아니라 우리의 소리를 찾아갔던 그의 치열한 구도의 산물이다. 번안팝을 부르던 트윈폴리오와는 사실 비교도 안되게 훌륭한 디스코그래피이다. 그러나 송창식이 세시봉 특집에 나와서 40년만에 다시 포크팝송을 불러도 어울리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윤형주이다.
 

놀러와에서 얻은 윗 주소를 클릭하면 송창식 윤형주의 천상의 화음 슈베르트 '숭어'를 들을 수 있다. 숭어를 부르는 윤형주의 목소리는 맑기가 그지 없다. 투명하다. 굵게 스적스적 걸어가는 송창식의 위에서 아름답지만 결코 잔망스럽지 않은 장식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마치 노래를 배우는 고등학생들이 아주 모범적으로 소리를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는듯하다. 두명의 목소리, 개성이 너무 뚜렷하면서도 이렇게 잘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 나는 여기서는 가늘고 높은 윤형주의 목소리에 끌린다. 송창식의 발성이 싫다는 게 전혀 아니라 나의 취향이 경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느다랗게 여리지만 결기 있는 테너의 목소리. 태지와 비슷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버닝하게 하는 것은 송창식을 보는 윤형주의 눈빛이다. 또 송창식의 눈빛이다. 철들자 염한다는 송창식의 말에, 사회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철들면 아마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 걸거라는 말에 윤형주는 '철들지 마, 나 너 염하기 싫어'라고 말한다. 송창식은 '너죽고 나 따라 죽으면 되지, 같이 죽지 뭐' 그런다. 그게 조영남이 친 대사였다면 바로 흰소리 하지 말라고 공박했을 윤형주는 그럼 그걸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나는 둘의 사이를 몰랐기 땜에 응? 왓츠 고잉온? 그랬다. 놀러와 세시봉1편을 여러번 돌려보면서 송창식, 윤형주의 화음은 다른 사람과 다르고 눈빛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며 둘 사이에 거의 무조건적인 신뢰가 흐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윤형주는 집안이 좋고 의대생이었고 교회다니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범적으로 나이드신 교회 어르신인 것이다. 그는 조영남의 파격과 자유가 부러울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가 '사회적으로 세련된 모범 할아버지'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의 백그라운드는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면서 조영남과 같이 잠깐 나눈 것처럼 다 가진 부르조아의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술혼은 마치 송창식과 함께 있을 때 빛을 발하는 듯하다. 송창식은 가난했고 노숙을 밥먹듯이 했으며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음악에서만큼은 천재였다. 송창식의 세시봉 데뷔 2주 후에 무대에 오른 윤형주, 결국 둘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 당시 윤형주가 송창식을 자기 집에서 유숙하게 하려 한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달랐는데도. 결국은 윤형주 어머니의 밥상을 받지 못하고 나와버린 송창식은 또 얼마나 순수한가. 상처입은 어린 새다. 함부로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트윈 폴리오가 해체한지 41년만인 지금도 저렇게 쳐다본다. 윤형주가 송창식을 본다. 왜냐하면 고음을 맡는 그가 주된 멜로디의 창식을 보며 들으며 음의 높이를 재야하기 때문이다. 송창식도 윤형주를 본다 4월에 있었던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에서 아주 오래된 친구라고 윤형주를 소개하고 주었던 그 눈빛을 나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세상에 다시 없을 사랑과 우정과 신뢰의 눈빛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잘 보여주는 캡쳐다. 왕자님같이 세련된 윤형주, 고운 목소리의 그. 한복디자인의 옷을 입은 송창식, 풀어헤친 앞섶. 그러면서도 너무 잘 어울린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친구, 너무 다르게 살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 진중한 교회 어르신인 그가 기인이며 도사인 송창식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 같이 죽자는 말에 끄덕일 우정. 어찌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나. 이 화음에, 42년전 숭어에서 시작해 2010년의 웨딩케익에서 연륜있는 목소리로 다시 만들어 내는 이 화음에, 이 사랑에 어찌 흠뻑 취하지 않을 수가 있겠냔 말이다. 내가 열광해도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40대 아줌마가 60대분들에게 열광 좀 하기로소니 무슨 흠이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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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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