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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기사] 문화일보-대중가요로 풀어낸 한국의 서정 1

by 팬더54 2008. 11. 10.



[문화일보뉴스 2004년]안도현은 ‘그의노래’에 왜 가슴을 칠까



<대중가요로 풀어낸 한국의 서정-1>
안도현은 ‘그의노래’에 왜 가슴을 칠까


송창식


시인 안도현·이문재·박철씨…. 이제 40줄에 들어선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시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술자리에서 부르는 노래가 비슷한 시대의 노래들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 이씨의 애창곡은 가수 송창식씨의 노래 ‘선운사’다. 박씨는 가수 정태춘씨의 노래 ‘서해에서’를 애절하게 부르는 것이 특기다.


안씨는 송창식씨의 모든 노래를 부른다. 역시 40대인 중견소설가 신경숙씨와 시인 조은씨가 몇년전에 나왔던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 삽입곡으로 송창식씨의 노래 ‘밤눈’을 추천했다는 사실은 문단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다.


이 40대의 한국 문인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송창식, 정태춘, 김정호 등 일련의 70, 80년대 포크송 가수들의 노래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이들이 청춘을 보낸 시절에 배우고 불렀던 노래였기 때문일 수 있다. 또 한국 대중가요에서 이른바 싱어송라이터로서, 창작을 하는 아티스트 1세대의 노래란 점도 지나칠 수는 없다.


‘7080’ 문화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지금, 단순히 복고취향·추억찾기 과정의 하나로 ‘7080’문화가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이들의 노래에서 이른바 산업화 이후 최초로 자신의 문화를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자 했던 첫세대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2년전 세상을 떠난 문화비평가 이성욱은 “70, 80년대 한국 대중가요야말로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를 담은 노래의 보고”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시대, ‘7080’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시대 대중가요가 감추고 있는 ‘한국의 서정’을 찾아본다.


송창식(56)씨가 활동한 시기는 묘하게도 70, 80년대 전시기와 겹친다. 1970년에 그의 첫 솔로앨범 ‘창밖에는 비오고요’가 나왔으며 1989년 그의 마지막 앨범 ‘담배가게 아가씨’가 나왔다. 이른바 ‘7080’세대라고 부르는 저 한국 40대의 문화사적 시대배경에 송씨의 전활동시기가 고스란히 얹혀 있다.


지금 송씨를 만나려면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카페촌에 있는 ‘록시’에 가면 된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번은 ‘록시’에 나와 노래를 부른다. 밤 9시30분 쯤이면 어김없이 무대에 나와 여전히 힘차고 농익은 목소리로 ‘한번쯤’ ‘한걸음만’ ‘왜불러’ ‘사랑이야’ ‘토함산’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부른다. 지난 24일 ‘록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송씨를 만났다. 모두 40, 50대인 관객들…. 광주광역시에서, 서울 잠신동에서, 경기도 퇴계원에서… 전국에서 마음먹고 송씨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이 둘레둘레 앉아서 그 시절 자신의 청춘을 들이켜고 있다. 여전히 그는 꽃다발 세례를 받고, 앙코르요청을 수없이 받으며 신청곡이 쇄도하고 있는 인기 가객이었다. 물론 이젠 자신의 노래반주를 아들 친구가 해주고 있을 정도로 그도 ‘늙은 오빠’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 있는 방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노래시대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번째 시기는 ‘창밖에는 비오고요’(70년)에서 군대(7개월 방위)가기 직전에 만든 ‘밤눈’(73년)까지다. 모두 세장의 앨범이 나왔다. 72년에 ‘딩동댕 지난 여름’이 실린 앨범이 발표됐다.


“‘밤눈’은 통기타 가수로 가수인생을 끝맺겠다고 마음 먹고 만든 노래다. 입대영장을 받았는데, 군대 갔다와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심란하던 시절이었다. 마침 그때 소설가 최인호씨가 주변의 통기타 가수들에게 노랫말을 줘서 곡을 붙이게 됐는데, 내게 배당된 노랫말이 ‘밤눈’이었다.” ‘밤눈’은 최인호씨 작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최씨의 동생 최영호씨가 모티브를 만들었단다.


두번째 시기는 이른바 그가 상업가수로 인기를 끌던 시절. 제대후 발표한 ‘한번쯤’(74년), ‘고래사냥’‘왜 불러’(75년), ‘새는’(76년)을 발표한 시기다. 가수왕까지 차지했던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던 시절이다. 세번째 시기는 서양음악을 하는 한국의 대중가수로서의 고민을 반영한 시기. ‘토함산’(78년), ‘가나다라’(79년), ‘슬픈 얼굴 짓지 말아요’(80년), ‘우리는’(83년), ‘담배가게 아가씨’(89년)등이 이 시기에 나왔다.


물론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은 ‘고래사냥’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이란 가사로 흘러가는 노래….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 터뜨릴 데 없는 젊음의 울분을 ‘고래사냥’이란 대상을 향해 고함치게 만들던 노래…. ‘자 떠나자…’란 말은 듣기에 따라서 ‘독재 없는 자유민주주의를 향해’란 말로 들리기도 했다.


그는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한 발자욱 두 발자욱 눈길을 가네’란 서정적인 노랫말로 허탈한 젊음의 가없는 심정을 담았던 노래 ‘밤눈’에 대해서는 “다시는 만들 생각도 없고 그렇게 부를 수도 없는 노래”라고 흘러가버린 세월을 이야기했다.

전형적인 서양노래구조 속에서 아슴아슴하게 노래를 부르기에는 자신의 생각과 노래부르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 그러나 저 70년대적 정서, 적당히 허탈하고 감상적이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삶에의 의지를 담고 있는 곡 ‘밤눈’이 자신의 음악인생 첫 시기를 대표하는 곡이면서도 그 시대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밤눈’에 등장하는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인생처럼, 그때 팍팍한 70년대를 견뎌냈던 한국의 40대들이 지금 그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금 힘든 시대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1000여개의 곡메모를 해두었다는 송씨는 오후 2시 정도에 일어나서 오후 7시까지 5시간은 순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단다.


“운동도 하고 곡도 쓰고 컴퓨터도 하고 여러가지를 한다”는 대답에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냥 제자리에서 맴돌기를 한단다. 카페에 나와서 노래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소일거리”라는 그는 “어떤 사람들은 카페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하는데, 내가 처음 노래를 한 곳도 카페였다”며 여전히 카페에서 노래부를 계획이란다. 10년 넘게 앨범을 내지 않았는데, 이제 신작 앨범을 낼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배문성기자 msbae@munhwa.co.kr

기사 게재 일자 200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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