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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오마이뉴스] 묵은 잡지에서 만난 두 사람, 송창식과 최진실중..

by 팬더54 2008. 11. 28.

묵은 잡지에서 만난 두 사람, 송창식과 최진실 - 오마이뉴스
최종규의 '책과 헌책방과 삶'중에서 발췌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88644


주간잡지 <TV저널>은 첫 호가 나올 때부터 알아서, 늘 형 심부름을 받아서 집부터 걸어가서 잡지 파는 곳을 오가면서 사 오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집 둘레에는 마땅히 신문 파는 곳도 없어서, 어릴 적에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신문 한 장을 사려고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한 장 사들고 오곤 했어요.  오가는 데 얼추 20∼30분쯤 걸렸습니다.

 
.. 위에 보이는 것과 같은 내 소품(푸르른 날)을 그가 단숨에 노래부르는 걸 들으면서 나는 그 노래의 가락이나 음색이 메스껍거나 너절하다는 생각을 조금도 느끼지 않은 채 따라가고 있다가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에 가서는 내 자신이 그걸 작곡한 것 같은 공명감 속에 젖어들기도 했었으니, 나로선 좋은 작곡가를 하나 얻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이상으로 자기 시의 작곡이라는 걸 더 기대해 보기도 어려운 일 아닐까?


그런데 그 뒤 송군과 내가 만난 어느 좌담회에서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그는 인천의 고교생 시절에 내가 강연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하던 말 가운데서 “슬픈 일 그것은 늘 잘 사귀어서 좋은 벗이 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했던 말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 그 뒤의 그의 인생과 예술을 이끌어오는 데 마음의 힘이 되었다는 것이어서, 나는 이게 또 눈물겹게도 무척 고마웠다. 나와 그는 말하자면 이렇게 서로 잘 통할 만한 가슴과 가슴을 지니고 있었구나 해서 말이다 ..  (서정주-나의 스타론 : 송창식 / 63쪽)

 
묵은 잡지 <TV저널>을 죽 펼칩니다. 낯익은 얼굴이 많이 보입니다. 이제는 텔레비전을 아예 안 보기에 연예인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지만, 이 무렵은 드문드문 보곤 했기에 여러 이름이 살갑게 다가옵니다. 이 가운데 송창식 님 이야기를 쓴 서정주 시인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시쓰는 서정주 님께서는 어쩌면 송창식 님 집안 이야기를 모르셨을 텐데, 저도 얼마 앞서까지는 몰랐지만, 노래하는 송창식 님이 어릴 적 어떻게 지내야 했는가를 듣고 난 뒤, 이분 노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노래도 노래이지만, 무엇보다도 '왜 불러'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송창식 님 고등학교 적 동무인 김윤식 시인한테 듣고서는 가슴이 몹시 저렸습니다. 먼저 '왜 불러' 노래말을 옮겨 보지요.

 


송창식['87 다시 부르는 노래] - A02 왜불러

 ..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은 / 왜 불러 왜 불러 토라질땐 무정하더니 왜 / 자꾸자꾸 불러 설레게 해 / 아니 안 되지 들어서는 안 되지 / 아니 안 되지 돌아보면 안 되지 / 그냥 한번 불러보는 그 목소리에 / 다시 또 속아선 안 되지 / 안 들려 안 들려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 안 들려 안 들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 /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 가던 발걸음 멈춰선 안 되지 /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 자꾸만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 이대로 돌이켜선 안 되지 /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은 / 왜 불러 왜 불러 토라질 땐 무정하더니 왜 /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

 

제가 혼자만 몰랐나 싶어서 인터넷 기사나 자료를 뒤져 봅니다만, '왜 불러'라는 노래를 ‘장발 단속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하던 때를 풍자하는 노래’쯤으로만 여기고, 정작 이 속내까지는 살피지 못합니다. 그때 1970년대 사회 흐름을 헤아린다면, 그렇게 ‘사회와 정치 풍자’ 노래로 여길 수 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이 노래 '왜 불러'는 자기를 버린 친어머니 때문에 부르게 된 노래입니다. 자기를 버린 친어머니가 어느 날 자기가 외롭게 남의집살이를 하는 곳에 찾아와서 자기 이름을 부르더랍니다. 보고 싶다고. 친어머니는 애닯게 부르기까지 했답니다. 송창식 씨는 이제까지 나를 버리고 한 번도 찾으러 오지 않고서 이렇게 늦게 와서 어떻게 하겠다고’ 하면서 끝내 대문을 열어 주지 않았답니다. 여태까지 외롭게 내버려 두고, 이제 다 자라니까 찾아와서 자기한테 어쩌라는 거냐며,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친어머니가 더 자기를 부르지 않고 돌아갈 때까지 참았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처음으로 듣고 난 다음, 송창식 님이 부른 다른 노래들에도 이렇게 당신한테 가슴 저린 삶을 찬찬히 담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창식 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당신 삶을 칼로 저며내듯 외친 울부짖음이 아니냐 싶더군요. 서정주 시인이 쓴 시 '푸르른 날'에 가락을 입힌 일도, 어쩌면, 당신이 걸어야 했고 당신이 부대껴야 했던 숱한 아픔과 눈물이 고이 담겨 있어서 그렇게 목이 터지게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을 외치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외쳤겠구나 싶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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