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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동아닷컴] 송창식과 미당

by 팬더54 2009. 2. 21.
작성자 : 김탁환
<대중문화 째려보기> 송창식과 미당(동아닷컴, 2001.1.5)

출처:
http://www.kimtakhwan.com/cgi-bin/ttboard/ttboard.cgi?SearchBlock=1&act=view&bname=CULTURE&code=43&page=10





12월은 바야흐로 콘서트의 계절이었습니다. 가수들은 너나없이 공연장을 빌려 크리스마스나 연말 기분을 내려는 대중들을 끌어들였지요. 여기저기 토크쇼에 나와서 콘서트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들국화가 고등학교 교복 차림으로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나올 정도니까요. 홍보활동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로부터 자유로움을 누리려는, 개인기가 아닌 노래 하나만으로 가수의 길을 가려는 이들에게, 콘서트는 음반 판매와 함께 매우 중요한 생계수단이니까요.


서태지나 백지영, 들국화 등의 공연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중년의 포크가수 네 사람도 공연을 가졌지요.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이들의 공연은 이례적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녹화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포크계를 대표하는 네 명의 큰 별이라는군요.


밤늦게 텔레비전 앞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과연 저 사람들이 우리나라 포크계의 네 별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히트곡을 내고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면에서는 분명 그들의 위치가 확고하지만, 포크의 저항정신이랄까 영혼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들려주었느냐는 면에서는 자꾸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포크계의 거두를 꼽으라면, 저는 한대수, 양병집, 김민기를 들겠습니다. 김민기가 없는 양희은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앞의 네 가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반백년의 삶을 지나는 동안 가수를 천직으로 알고 노력한 분들이니까요. 특히 저는 송창식님의 고전주의적 악풍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나의 기타 이야기'를 듣노라면, 예술혼을 불사르는 음악가의 진솔한 고백과도 같아서 어떤 전율을 느꼈지요.


어느 날 그녀 목소리에 깨어나보니
내가 만든 오동나무 소녀 가슴에
반짝이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지
여섯 줄기나 흐르고 있었지
오동나무 소녀에 마음 뺏기어
가엾은 나의 소녀는 잊혀진 동안
그녀는 늘 푸른 그 동산을 떠나
하늘의 은하수가 되어 버렸던 거야
--'나의 기타 이야기' 4절


오동나무 소녀 가슴에 흐르는 은하수는 왜 하필 여섯 줄기 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타줄이었던 것입니다. 송창식님은 오동나무 소녀 곧 기타에 영혼을 빼앗겨 첫사랑과 이별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성보다 예술을 더욱더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순전히 저의 추측입니다만, 송창식님의 노래에는 분명 예술가만이 가지는 불변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변치 않는 삶의 태도, 변치 않는 웃음, 그것들은 곧 그 열정으로부터 나오는 고전적인 풍모이겠지요.


송창식(90골든3집)-푸르른 날


그런 송창식님이 미당 선생님의 시 '푸르른 날'에 곡을 붙였던 적이 있지요. 가수들이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만, 저는 왜 송창식님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로 시작하는 이 시를 택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송창식님은 그 시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가 봅니다. 눈이 내리고 봄이 또 오더라도 그리운 사람만을 그리워하는 삶, 그것은 곧 내가 만든 오동나무 소녀를 통하여 내 곁을 떠나 하늘의 은하수가 되어버린 소녀를 살려내려는 송창식님 자신의 삶이 아니었을까요?



미당 선생님이 작고하신 뒤로 인터넷 시점에서는 앞다투어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대시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상술이 덧붙여진 것 같아 마음이 썩 편치 않군요. 오늘 아침 신문에는 미당 선생님이 30여년 동안 머무르신 예술인의 마을 자택을 기념관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문인 제자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는데, 아직 서울특별시에서 별다른 의견을 내어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기념관 건립에 필요한 돈이 문제겠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인의 마을이 비좁다면 근방의 보라매 공원이나 하다못해 대학교 문화관을 빌려서라도, 미당 선생님의 기념관 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여는 것은 어떨까요? 미당 선생님이 작고하신 뒤로 책을 팔아 약간의 돈을 번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가 후원만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송착식님이 부르는 '푸르른 날'을 듣고 싶네요. '나의 기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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