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2001년 4월호
[가요비사]국가대표 가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분명한 가수, 불분명한 인간 송창식
송창식은 윤항기 이상으로 가요사에 남긴 업적이 지대한 인물이다. 윤항기가 록 출신이었다면 그는 통기타 포크음악이 배출한 MBC 가수왕이었다. 포크의 거성이었던 것은 물론 ‘토함산’이나 ‘가나다라’가 입증하듯 포크와 국악의 접목을 시도한 개척자였다.
가수로서 송창식은 이처럼 분명한 존재였지만 당시 ‘인간 송창식’은 정녕 알다가도 모를 불분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를 본 공연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막말로 하자면 ‘괴물’이고 좋게 말하면 기인(奇人)이었다고 할까? 자기 좋을 대로, 멋대로 살아갔고 원체 ‘어벙’했던 까닭에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최성일씨는 “우선 어떻게 해서 가요계에 나오게 됐는지 모르겠다. 명동에서 윤형주와 만나 트윈폴리오를 조직해 데뷔한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어떤 꿈을 가지고 연예계에 진출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먼저 그의 괴벽 가운데 하나는 철저한 ‘올빼미’였다는 사실.
1976년 서해 5도의 군부대 순회공연 때였다. 그중 백령도 공연에서 행사가 끝난 뒤 군인들 숙소에 가수의 잠자리가 마련됐고 모두 곯아 떨어진 한밤중에 그는 취침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연신 기타 줄을 퉁겨댔다. 보초가 득달같이 달려와 취침시간임을 경고했지만 그는 “알았습니다” 해놓고는 잠시 후 또 기타를 쳐댔다. 옆방 여자숙소에서 자던 가수 옥희는 혼자 신경질을 부리다 못해 “이제 그만 치고 제발 잠 좀 잡시다!” 하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송창식의 기타소리는 하염없이 밤하늘에 메아리쳤고 이 때문에 옥희는 아예 뜬눈으로 날을 새웠으며 상당수 군인들도 귀중한 잠시간을 빼앗기는 피해를 당했다.
그는 또 세수, 손톱과 발톱 깎기, 빗질 그리고 양치질 등 기본적인 공중생활 에티켓과도 인연이 멀었다. 옷차림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티셔츠 등 허름한 캐주얼 차림이었고 정장 입은 모습을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75년 가수왕으로 선정되던 순간에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맸으니 상이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공연 관계자들은 “그가 옷을 다려 입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구두도 한번 광을 낸 것을 못 봤다”고 증언한다(가수왕 맞아?).
게다가 엄청나게 무감각 무관심 무혈(無血)한 사람이 송창식이었다. 언젠가 공연 관계자들 앞에 굴곡이 어지러운 멋진 몸매의 다방 아가씨가 휙 지나갔다. 당연히 대다수 남자들은 “와, 끝내준다!” “아가씨, 더 쉬었다 가, 응?” 하며 짓궂게 시비를 걸었다. 이때 송창식의 반응. “왜들 그래요? 여자가 지나갔어요? 남자가 지나갔어요?”
좋게 말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할 만큼 대인관계에서 사리사욕을 차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무대 욕심만은 알아주었다고 한다. 객석에서 단 한 사람이 앙코르를 해도 신명나게 노래를 부른 사람이었다.
지난 1980년 서울 신사동의 야간업소 ‘88서울’에 출연했을 때 그는 세 곡을 부르게 돼 있었지만 앙코르 요청이 있자 다음 출연자에 대한 배려를 잊은 채 계속 불렀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돌아와주오’ ‘내 단 하나의 사랑은 가고’의 가수 임희숙은 “바빠 죽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사회자 최성일씨가 무대로 나가 송창식의 옆구리를 찌르며 “그만해! 다음 가수가 기다려!” 하며 퇴장 신호를 알렸건만 그는 여전히 기타를 치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답답하고 속 터질 노릇이었다.
송창식이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세상은 남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고, 그가 사는 세계는 이기심이나 공명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역이었다. 그런 괴물에, 목석에, 멋없는 가수가 일세를 풍미했다는 사실은 지금으로선 믿어지지 않는다. 만일 요즘 가수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가수왕은커녕 데뷔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1970년대 우리 음악계에 송창식이 있었다는 사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위대한 유산이다
송창식-11.청포도를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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