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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평론:강헌] 1997년-70년대 풍속도 압축적 형상화

by 팬더54 2008. 11. 10.

 

70년대 풍속도 압축적 형상화 (1997.11.09)

 

노래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노래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 사회 상과 대중들 정서가 담겨있다. 히트 가요들을 통해 우리 현대사 단면들 을 되짚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

 

고래사냥(최인호 작사·송창식 작곡·송창식 노래).


 

송창식의 고래사냥 1975년은 7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극점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은 좁은 캠퍼스를 뛰쳐 나와 한 나라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다. 최인호 소설, 이장호-김호선-하길종 영화, 그리고 셀 수도 없는 젊은 통기타 음악인들의 노래는 고도 성장의 그늘과 억압으로부터 탈출구를 찾으며 부글거리는 욕망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강력한 파급력을 지녔던 노래에서는 이 비등점이 불행하게도 너무나 급작스럽게 파국을 맞아야 했다. 75년 여름과 겨울 유신정권은 예술문화윤리위원회를 내세워 '대중가요 재심 원칙 과 방향'이라는 가요 규제를 선포했다.

 

이를 통해 무려 4백40여곡에 대해 음반발매와 방송을 전격 금지하는 탄압의 칼을 빼어들었다. 이 칼이 겨냥한 주 표적이 통기타와 로큰롤의 젊은 기수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5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하길종 감독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음악은 통기타 군단 선두주자 송창식이 맡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왜 불러', '고래사냥'과 '날이 갈수록'(김상배 작사-작곡) 같은 노래를 선보였다. 이 노래들은 영화 흥행을 뛰어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중에서도 행진곡 스타일의 독특한 드럼 서주로 시작하는 '고래사냥' 은 당시 대학가 청년지식인들이 안고 있던 절망과 희망을 도도하게 포착한 절편이었다. '고래사냥'은 권력의 강압적 조치에 붕괴되는 청년문화의 운명을 극적으로 암시했다.

 

특히 서술적인 전반부 12마디,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는 70년대 내면 풍속도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한다. 강세와 매듭없이 이어지는 이 지속 선율은 주류 대중음악에 횡행했던 상투적 운문 형태의 기만에 대한 이 세대 특유의 전복적 '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노래는 '수출 1백억달러와 국민소득 1천달러'라는 국가적 환상을 우회적으로 질타한다. 그것은 비겁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고래사냥'에 곧바로 '퇴폐'와 '자학' 낙인이 찍혀 금지곡이 된 것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운명이었다.

 

<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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