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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난 50년째 수련중… 추억으로 먹고 살진 않겠다" 본문
"난 50년째 수련중… 추억으로 먹고 살진 않겠다" |
지방돌며 콘서트 라이브 무대서는 가수 송창식 [조선일보] 한때 우리 젊음이 열광했던 송창식(宋昌植·58)은 추억의 인물로 되살아 오는 줄 알았는데, 그는 이를 경멸했다. “요즘 70·80년대 추억 바람이 부니, 윤형주가 다시 ‘트윈폴리오’를 하자고 해요. 그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만 충분해요. 하지만 음악이 인생이면 그럴 수가 없죠. 매일 수련해야죠. 나이만큼 발전한 노래를 불러야지 스무살 때 노래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너는 전혀 발전 안 했기 때문에 듀엣을 할 수 없다’고 했죠. 윤형주는 수련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노래가 인생인 자와 아닌 자의 차이죠.” 그와 인터뷰하려면 늦은 밤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는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은화(隱花)식물처럼 피부가 하얀 것도 그 때문이다. “햇빛은 오후 2시쯤 일어나 커튼을 당기면 잠깐 들어오는 걸로 끝이오. 방 안에서 2시간 동안 빙글빙글 돌아요. 그게 나 혼자 하는 운동이죠. 일종의 입선(立禪)인데, 3000일쯤 됐어요. 1만일 수련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지방 공연할 때도 운동할 수 없는 여건이면 아예 안 갑니다.” 그의 운동은 젊어서 굶주리고 노숙할 때 웅크리던 습관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일상을 거꾸로 살게 된 것도 조용한 통금 시간을 이용해 작곡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라고 했다. ―가정을 위해 당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용의는? “모든 머리 쓰는 작업을 그 시간에 해야 하는데 어떻게 바꿔요. 새벽 1시쯤 컴퓨터를 켜면 금방 시간이 가요. 딴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나는 컴퓨터 전문가예요. 거기서 최신 음악 정보도 얻고, 악기 사이트에도 들어가죠. 나이듦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하는 일에 수련이 필요해요.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인 7살 때부터 노래 부르고 곡도 쓴 음악가였어요. 다들 천재라고 불렀어요. 데뷔 후 ‘창밖에는 비오고요’ ‘딩동댕 지난여름’ ‘밤눈’ ‘상아의 노래’를 부르다가, 27살 때 영장이 나와 방위로 끌려갔어요. 그때는 벌써 20년을 했잖아요. 내가 굉장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AFKN음악을 들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렇게 기울인 노력이 개판이었어요. 며칠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지요. 그동안 닦은 서양음악을 모두 버리고, 나를 부정했어요. 그렇게 해서 ‘피리부는 사나이’ ‘한번쯤’ ‘새는’ 같은 노래를 작곡하게 됐지요.” 수련을 강조한 그가 15년째 신곡 발표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왜 안 했느냐, 음반을 만들면 사업적으로 20만장 파는 게 목표인데, 이놈들(후배가수)은 20만장이면 밑졌다는 거요. 그 말을 듣고서 내가 성질이 돌아 안 했어요. 또 하나는 테크니컬한 문제요. 음악이 인생인 놈이 우리나라에 한 놈도 없어요. 내가 작곡을 하면 그런 수준의 얘들과 같이 해야 돼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음반을 내왔어요. 그런 아픈 기억이 있어.” ―‘왜불러’ ‘고래사냥’ ‘사랑이야’ ‘선운사’ ‘토함산’ ‘가나다라’ ‘우리는’ ‘푸르른 날’ ‘담배가게 아가씨’…,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는? “어느 것이나 호흡의 찌꺼기 같은 거니까. 머리로 요렇게 조렇게 만들었을 뿐 심혈을 기울인 것이 없어요. 내 새끼라고 할 게 없고 애틋하지도 않아요.” ―그러면 애틋한 게 무엇이 있죠? “함께 수십년 살아온 집사람이 애틋하죠. 5년 전부터 자기 사업한다고 떨어져 살아요. 무슨 사업을 하는지 몰라요. 내가 알면 그 속에 말려 들어갈 것 같고. 우리 집사람도 내가 관심 갖는 것을 싫어하고.” ―그러면 자녀 교육은? “나는 애한테 참견하는 것은 반대해요. 성장할 때까지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줄 뿐, 있는 그대로 놔둬요. 걔들도 자기 생각과 인생이 있으니까. 둘째 여자애는 남자들과 많이 어울려 다녔어요. 양심상 그걸로는 야단을 못 치겠어요. 남자를 좋아해 ‘날라리’가 되는 것은 제 팔자인데. 내가 갖고 있는 사고는 일반적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 모르나, 내게는 너무나 일반적이에요.” ―돈은 많이 벌었습니까? “많이 벌었다고 할 수 없어도, 한달에 노래방 저작권으로 1000만원쯤 들어와요.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나는 노래를 인생으로 했지만 조용필 같은 사람처럼 최고 가수가 되려는 노력을 못 했어요.” ―왜? “그게 부질없다고 생각했어요. 최고가수상 같은 건 그냥 줘도 끈적끈적한데, 그걸 일부러 받으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사람간의 끈적한 관계를 싫어하나요? “그건 몸에서 빠져나오는 점액질, 몸과 마음의 습관에서 나오는 쓸데없는 불순물 같은 거요. 그런 거 안 좋아해요. 하지만 사람과 안 어울리는 건 아닙니다. 바둑 3단에 고스톱도 치고. 자동차 정비도 건축 설계도 해요. 우리 집 설계도 내가 했고, 노래부르는 미사리 카페도 내가 설계해줬어요.” 기자는 한밤중에, 그는 대낮에 헤어졌다. ----------------------------------------------------------------------------- 아래는 harlempak라는 아이디로 창식사랑 평론기사방에 올리신 글을 소개드립니다. harlempak E-Mail harlempak@hanmil.net 내 용 (2004-10-27 오후 12:26:40 ) 뉴욕 교포 신문중 하나인 s일보에 한 주필께서 창식님에 관한 기사를 썼다. 도데체 조선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레, 신문사 주필이 한 가수의 최근 행보에 대해 사설란에 썼을까 궁굼했다. 내용인즉 어딘가 실린 인터뷰 내용이, 그 신문사 주필은 못마땅한가 보다. “음악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 우리나라엔 한 명도 없어” “요즘 70•80년대 추억 바람이 부니, 윤형주가 다시 ‘트윈폴리오’를 하자고 해요. 그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만 충분해요. 하지만 음악이 인생이면 그럴 수가 없죠. 매일 수련해야죠. 나이만큼 발전한 노래를 불러야지 스무살 때 노래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너는 전혀 발전 안 했기 때문에 듀엣을 할 수 없다’고 했죠. 윤형주는 수련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노래가 인생인 자와 아닌 자의 차이죠.” 그러면서 창식님은 교만하고 ,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며-아마도 다수의 일반인과 다른 생활 패턴을 칭하는듯, 형주님에게 사과를 해야한다고 했다. 창식님의 발언은 보는이의 시각에 따라, 그를 비판한 신문사 주필처럼 오만해 보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창식님의 표현이 직설적이고 거친듯하지만 그의 요지는 92%공감한다. 솔직하고 전투적이며 자신을 신뢰하며 아울러 채찍질 하는 발언이다. 소위 말하는 내공의 힘인듯…(약간 투박한 아쉬움이 있지만). 아무튼, 그의 예술가적 정열, 독특한 세계관, 음악적 재능, 자식 교육관, 부부관계, 한국 대중음악시장의 현안,…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창식님은 아마도 이미 도의세계에 성큼 다가가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물론 형주님이랑 대면한 적이 없으니, 그가 수양을 했는지 않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으로 느끼긴, 세간에 알려진 형주님의 사회적 지위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주류라 불리우는 top 1%에 드시는듯. 시대를 풍미하신 가수 이시고 광고음악사업으로도 돈을 버시고, 큰 교회에 직함이 있으시고, 자제분들도 외국에서 공부하신 음악가이시고, 미국 카네기홀에서 가족음악회를 하시고, 기타등등… 창식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형주님의 사회적 지위가, 그게 꼭 문제가 되는건 아닐테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과 운이 있었을 수 도 있으니까. 아무튼 창식님이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며, 본인이 말씀 하신데로 수련을 하시면서 깨우친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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