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송창식(한국음반 HKR HC-200200)
발매: 1983.5.25  
기획사:박승인
레코딩 스튜디오:서울 스튜디오


 
A1. 우리는 (송창식 작사/작곡)                            4:15
A2. 아 저기저기 (박승인 작사/송창식 작곡)           3:01
A3. 서울 서울 서울 (박승인 작사/송창식 작곡)       2:49
A4. 목련 (김현수 작사/송창식 작곡)                     3:49
A5. 발길따라 (뮤지칼 춘향전 중에서) (송창식 작사/작곡) 4:08
 
B1. 푸르른날 (서정주 시/송창식 작곡)                  3:01
B2. 반상에 놓인돌이 (고 정창현 7단에게 바치는 노래) (송창식 작사/작곡)  2:31
B3. 그리운 님이여 (박승인 작사/송창식 작곡)        3:22
B4. 꽃잎 (송창식 작사/작곡)                               3:02
B5. 토함산 (김현수 작사/송창식 작곡)                  4:02

B6. 너와 내가                                                   1:59

 

 
송창식['83우리는]A05 B01 연속듣기
 
송창식['83우리는]A01 듣기


['83우리는]A02,A03,A04,B02,B03,B04,B05 연속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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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83 송창식 (1983)/ 강헌]

"저잣거리 현자"가 일궈낸 음악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전복

조용필과 견줄 수 있는 단 한명의 가객은 송창식이다. 5공화국 시대의 매너리즘은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가나다라〉(1980)를 거쳐 〈에이야홍 술래잡기〉(1982)를 지나 마침내 우리 대중음악의 고전인 〈우리는〉과 〈푸르른 날〉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1968년 번안곡 꾸러미를 안고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는 통기타 붐의 한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내나라 내겨레〉와 〈밤눈〉을 담은 데뷔 앨범과 초기의 최대 걸작 〈나그네〉와 〈창밖에는 비오고요〉를 담은 두번째 앨범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한국 싱어송라이터 계보의 거장이 될 것임을 예감케 했다.
 
70년대 초반 〈피리부는 사나이〉와 〈한번쯤〉의 성공으로 주류의 달콤함으로 기우는가 했으나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왜 불러〉와 〈고래사냥〉을 터뜨림으로써 우리의 불우했던 청년문화의 마지막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랑이야〉와 〈토함산〉을 담은 1978년 앨범을 신호탄으로 하여 외로운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5공화국 시대의 3부작은 그것의 중간 결산이며 그 중에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이 앨범은 우리에게 대중음악의 예술적 품격을 가르쳐 주었다.

송창식은 베스트셀러의 스타가 아니라 스테디셀러의 작가이다. 비록 당대의 맞은 편 봉우리인 조용필처럼 오빠부대의 열광을 끌고 다니진 못했지만 70년대를 살아남은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똬리틀고 있는 저잣거리의 현자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득음이 누에가 실타래를 풀듯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기나긴 그의 음악 이력을 통해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내면의 총독부와 힘겨운 투쟁을 거듭했다.

 그는 초기의 〈나그네〉에서 중기의 〈그대 있음에〉, 그리고 이 앨범의 두 머리곡을 통해 탁월한 선율과 깊이 있는 가사, 그리고 거침없는 절창으로 이른바 ■고급음악■의 전당 속에 갇힌 한국 ■가곡■의 본령에 도전했다. 그것은 천시의 시각으로 일관해 온 기득권 세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전복의 작업이었다.

그 전복의 더듬이는 우리 대중음악의 근원적인 무의식인 트로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이미 데뷔 앨범에서 최인호의 노래말을 토대로 〈꽃 새 눈물〉이라는 트로트의 현대화를 기획한 바 있으며 이 앨범에 이르러서도 〈목련〉이라는 간결한 소묘의 세계에 트로트를 끌어들어 천의무봉의 솜씨로 녹여낸다. 이 5음계 2박자의 애상과 영탄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다음 앨범의 〈참새의 하루〉에서 집대성된다.

그에게 트로트는 버리고 싶은 유산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한계를 돌파해야 할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7년 앨범 이후 그의 침묵은 8년을 스쳐지나고 있다. 해방 50돌도 저물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가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날짜가 지나버린 초대장을 쓰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일까?

출처: 한겨레신문 1995년 11월 17일

 


[supersang]

그의 노래 중에는 절대로 재 편곡을 해서는 안 되는 노래가 몇 있는데 <우리는>이 거기에 속한다. 이 노래는 여기 있는 그대로가 딱 이다. 송창식은 원래 라이브가 어울리는 가수다. 그 말은 녹음되어 있는 것 보다 실제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야 그 진가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때껏 <우리는>을 TV에서나 Live로 여러 차례 들어봤지만 어디서나 이 앨범에서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느낄 수 가 없었다.
 
마치 가곡과도 같은 분위기의 <푸르른날>은 두 말할 것 없이 아름다운 노래다. 그가 80년대들어 꾸준히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 가운데 역시 사람들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노래들은 이러한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것들이다. 그가 만약 저 쪽으로 빠지지 않고 (저쪽이 어느 쪽인지 알것이다) 계속 이러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면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 믿기에) 70년 중반에 얻었던 인기를 80년대까지 이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도 가능하다.
 
여기서 소개가 필요한 노래는 <반상에 놓인돌이>다. 이 노래는 그의 바둑 선생이었던 정창현의 권유로 만들었다는데 조훈현이 9단에 오른 기념으로 이름을 부치려 했는데 마침 정창현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정창현 7단에게 바치는 노래로 탈바꿈해서 앨범에 실리게 되었다고 한다. 확실치는 않지만 바둑노래는 이게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최규성의 '추억의 LP여행'중에서]

82년 윤형주와 13년만에 트윈폴리오를 재결성, 음반을 발표하며 팬들의 향수를 달래주더니 85년에는 세계적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에 의해 취입이 추진되었던 공전의 히트곡 <우리는>으로 5회 가톨릭가요대상을 재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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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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