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슈퍼생 홈페이지에서 옮겨 왔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 송창식, 자연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 음악인의 초상


최창근   (3/20/2002)

* 이글은 최창근님이 쓰신글중에서 몇군데만 골라서 편집했읍니다. (글쓰신분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고 했던 것은 희랍 시대의 저 유명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였던가. 오늘 그대에게 좋은 일이 내일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인생만사 새옹지마라지 않던가. 기쁜 일과 슬픈 일은 늘 같이 오기에 인간의 운명의 속성은 어쩌면 일희일비하는 건지도 모른다. 습관은 인간의 신이고 그 습관의 집합체가 성격이라면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일 게다. 바닷물은 영양소를 제공받는 고기의 관점에서는 매우 깨끗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관점에선 마실 수가 없기에 더러운 것이다. 그것처럼,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 판타 레이. 그러니 사물을 볼 때 절대적인 관점을 만들지 말고 유연하라. 집착하지 말고 과거에 연연하지도 말라. 그것은 모든 일에 무책임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숙해지라는 말이리라. "모든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닮아간다. 인간의 영혼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음악은 인간의 영혼 그 자체이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송창식의 노래가 일찍이 그러했다. 아니, 그의 노래가 곧 그였다.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그 노래 속에서 먼저 가수 송창식을 떠올리기 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인 인간 송창식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정겨운 목소리로 "창식아! 어디 있니?" 하고 부르면 털털하고 소박한 함박 웃음을 머금고 어디선가 곧 나타날 것만 같은 사람. 노래가 사람이고 사람이 노래인 가수, 가수이기 전의 가수 혹은 가수가 된 후의 가수. 하회탈을 닮은 그의 세상을 초탈한 듯한 웃음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촌스럽지만 천진난만한 그 웃음은 촌스럽기에 더욱 빛나고 귀한 것이다. 아마 초등학교 5, 6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10대 가수를 뽑던 연말의 가요제 자리에서 그 식장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한복을 입고 나와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너울너울 춤을 추던 가수가 있었다.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 웃음 한 번 웃자"던 그의 손짓이나 발짓에서 그를 지켜보던 어린 시절의 꼬마는 신명과 흥겨움을 느꼈던 게 아니라 어떤 슬픔을 맛보았다.


 

 


01-[송창식개별곡]4월이가면



<사월이 가면>이라는 그의 노래처럼 사월이 오면 나는 늘 습관처럼 시인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를 떠올리며 송창식의 <선운사>를 입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잡아타고 선운사로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언젠가 제대로 작별인사 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첫사랑의 그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이를 만나 못다 한 나의 옛날 이야기를 하염없이 쏟아놓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싶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동백꽃 숲에서 몸을 섞고 싶었다. 내가 입은 옷처럼 그이를 따스하게 품어주고 싶었다. 사람의 몸이 꽃 속에 파묻히듯 오래오래 고요한 잠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와 최영미의 <선운사에서>를 닮은 노래, 속절없는 생의 슬픔을 간직한 노래를 부르며 나는 울었다. 이 세상에 부모는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인지,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무엇인지, 사랑은 무엇이고 미움은 무엇인지, 나를 괴롭히는 이 소용돌이치는 산란스러운 마음은 또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펑 펑 펑 소리내어 울었다. 송창식의 노래는 나를 눈물 많은 사내로 만들어버렸다


 

 

 

 

 


02-트윈폴리오,이종용['91히트곡경창]02.축제의 노래

 



솔로로 데뷔하기 전의 가수 송창식의 진면목이 펄펄 살아 숨쉬는 것은 아무래도 윤형주와 함께 했던 트윈폴리오 시절일 것이다. <축제의 노래>와 <웨딩케익> 그리고 <하얀 손수건>과 같은 추억의 노래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그들의 리사이틀 앨범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가 않고 선명한 여운을 남긴다. 1960년대 말에 시작된 그의 노래인생은 김민기가 작사한 <내나라 내겨레>나 비운의 천재감독 하길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고래사냥>과 같이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젊은이들의 울분을 담아낸 저항가요와 <상아의 노래>와 <비와 나>에서처럼 일상의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서정가요로 이어진다. 그러는 한편 그는 동시대의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음악인들의 곡을 자신의 앨범에 한, 두 곡씩 수록해서 발표하는데 이를테면 김정호의 <하얀나비>나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임희숙의 <진정 난 몰랐네>, 박 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과 같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가요계의 명곡들이다. 노래의 맛과 멋을 아는 당대의 한량들이나 풍류객들이 왜 그렇게 송창식의 노래에 열광하는가, 그 비법은 가사 쓰기와 곡을 짓는 법에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03-['75송창식2집]B-4.나그네



외국곡을 번안해서 불렀던 트윈폴리오 시절과는 달리 <창밖에는 비 오고요>와 <밤눈>이 실려있는 데뷔앨범과 <나그네>와 <애인>이 수록된 2집 앨범에서부터 송창식의 작곡 실력은 빛을 보게 된다. 그런데 노랫말의 작사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그를 만나기 위해 같은 학교로 온 고등학교 동창이자 스튜어디스 출신이었던 아내 한성숙에게 빚을 지고 있다. 중기를 지나 후기로 갈수록 한성숙-송창식 콤비의 놀라운 작사-작곡 호흡은 그의 노래에 더 한층 탄력을 붙게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마지막 결정체는 마치 이연실의 <찔레꽃>이나 <새색시 시집가네>에서와 같은 짙은 향토성과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보존된 <나의 기타이야기>였다. 이 서정적인 흥겨움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놀라운 곡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신선한 감흥을 선사하는 것이다.

 

 

 

 

 


04-송창식['78 Song Chang Sick]-A04.토함산

 



그는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것과 자연에 대한 예찬을 실행하는데 그 대표적인 곡이 <우리는>과 <사랑이야>, <나의 기타 이야기>, <참새의 하루>, <담배가게 아가씨>, <토함산>과 같은 노래들이다. <나의 기타 이야기>에서 감지되는 작품의 놀랄만한 완성도와 한성숙이 쓴 시적인 가사의 완결성, 그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멜로디의 우아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민요의 가락을 차용하거나(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봐요 봐요 날 좀 봐 주세요 동지섣달 꽃 보듯이 날 좀 봐요 봐요 봐요 날 좀 봐주세요 정든 님을 만났는데 빗죽뱃죽 빗죽뱃죽 말 한마디 못해 바보처럼 미소 지며 힛죽햇죽 힛죽햇죽 시간만 자꾸 가네 아리알 아리랑 쓰리랑 쓰리랑 아리랑 쓰리랑랑랑 아리쓰리 아라리요) 사설 시조의 한 토막을 따로 떼어 곡을 만들거나(창 내고자 창 내고자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들 장지 열 장지 고모장지 세 살 장지 암톨쩌귀 수톨쩌귀 쌍배목 외걸새를 크나큰 장도리로 뚝딱뚝딱 박아 이 내 작은 가슴에 창 내고자 . . . 님 그려 하 답답할 때는 여닫이나 볼까 하노라) 판소리의 한 대목을 빌려오기도 하면서(사랑, 사랑, 가슴에 품어 사랑 오, 오, 오, 사랑, 사랑, 눈길에 실어 사랑 오, 오, 오, 사랑, 사랑, 손끝에 담아 사랑 오, 오, 오 . . . 어화둥둥둥 좋을씨고 내 사랑 내 사랑이로구나 사랑, 사랑, 불씨에 질러 사랑 오, 오, 오, 사랑, 사랑, 하늘에 띄워 사랑 오, 오, 오) 그의 노래는 점점 더 깊은 경지로 무르익게 된다. 한국적인 음악색깔이 묻어나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때를 노래에 녹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의 송창식은 <왜 불러>나 <한번쯤>, <피리 부는 사나이>, <딩동댕 지난여름>, <꽃보다 귀한 여인>, <맨 처음 고백>을 부르던 초창기 시절과는 분명 다른 지점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끌고 나가고 있다.

 

 


05-송창식['80 가나다라]-A05.창내고자



1980년대 중반 단전호흡과 도 사상에 심취해 절에 들어가 독신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가 사람들 가슴속을 마구 휘저어 놓는 감성적인 노래와 생활 자체에서 우러나는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1990년 김민기가 주관한 [겨레의 노래 1] 음반을 통해서였다.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세상 어딘가에>를 후배가수 조경옥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부른 것이다. 1970년대 성장 제일주의 정책과 무분별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이 노래는 문명의 폐해를 담담하게 그려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 . . 있을까 . . . 평등과 평화 넘치는 자유의 바닷가 . . . !" 같은 노래 가사처럼 자연을 찾아 자연 속으로 깊이 침잠했던 송창식은 이렇게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06-겨레의 노래-12-노래극공장의불빛중-송창식 이세상어딘가에

 

 


우리 곁에는 '산에 가면 나는 좋더라 바다에 가면 나는 좋더라 님하고 가면 더 좋을네라만!'<산에 가면>(조운:1900-1947년 월북)이라는 어깨춤을 들썩이게 하는 신명나는 시와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 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묵화>(김종삼:1921-1984) 같은 마음 한 켠이 애련해지는 시도 있다. 또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을 배경으로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을 그려놓은 이숙자라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딱 들어맞는 [걷는 행복](이브 파칼레/궁리)혹은 [걷기 예찬](다비드 르 브르통/현대문학)이라는 책과 인간의 본성은 원래 느린 것이 아닐까 반문하게 되는 [느림](밀란 쿤데라/민음사)과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쌍소/동문선) 같은 책들이 한동안 서점가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엘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나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같은 책들을 볼 때 내 마음은 행복해진다. 이 풍요로운 삶의 예찬 또는 생명 예찬의 위대하고도 오랜 전통은 서양에서는 장 자크 루소, 랄프 왈도 에머슨,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같은 사상가나 마르틴 하이데거, 앙리 베르그송, 가스통 바슐라르 같은 철학자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 딜런 토마스, 프리드리히 횔덜린, 로버트 프로스트, 게리 스나이더들의 시인에서 그리고 동양에서는 <어부사>와 <귀거래사>의 명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의 굴 원과 도연명, 이 백이나 두 보, <장한가>의 백낙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가>의 대명사 일본의 바쇼를 거쳐 우리 나라로 들어오면 통일신라의 죽림칠현과 고려의 이규보, 조선의 송강 정 철과 고산 윤선도 그리고 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시대 그 희귀한 전통이 머무른 자리는 송창식이라는 한 음악인인 것이다.

 

 


07-송창식 골든1 04.그대있음에

 


 
그는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든 가수로도 유명하다. 어찌 보면 그의 노래에 숨어있는 섬세한 감수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품인 것처럼도 보인다. 김남조의 <그대 있음에>나 박남수의 <새>와 같은 시들이 그것인데 유독 미당 서정주의 작품인 <푸르른 날>과 <선운사>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짙고 독특하다. 가요라기보다는 고전적인 클래식의 범주로 접어드는 듯한 인상이라고나 할까. 일찍이 미당 서정주는 송창식을 두고 그 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찬한 바 있다 "가수 송창식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의 슬픔을 뼈에 저리게 느껴 노래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유난히도 대단했던 이 겨레의 슬픔의 바닥의 소리가 무엇인가를 잘 아는 가수이다. 그러나 그는 또 이 슬픔을 자기 나름대로 졸업함으로써 이겨 사는 여유와 유머와 풍류를 빌어 우리에게 전해주는 슬기의 가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우리의 꽃다운 생명의 어쩔 수 없는 환희를 풍겨내고 있을 줄도 알고 있는 좋은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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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팬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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