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가슴에 포크의 화살을…
하나의 결이 되어 1집 1984년 1월(198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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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폴리오는 듀오가 아닌 트리오로 시작했다. 60년대말 무교동의 유명 음악감상실 세시봉은 통기타붐을 주도했던 포크가수들의 메카. 홍대 도안과 2학년 이상벽(현재 방송MC)은 세시봉에서 <대학생의 밤>이란 프로의 사회를 맡고 있던 인기 MC. 그는 늘 홍익대 교정에서 기타를 치며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대는 서울예고 출신 송창식을 기억하고 이선권 사장에게 소개를 했다.
당시 세시봉에는 경희대 초대학장 윤영춘의 장남인 연세대 의대 2학년 윤형주와 연대 토목과 동급생인 이익근, 홍대 도자기과 2학년 강근식 등 쟁쟁한 대학생 포크가수들이 모여있었다. 윤형주는 66년 가을에 결성된 연세대 포크 트리오 라이너스의 멤버. 멤버였던 이장희, 유종국과 더불어 다운타운가에 제법 소문난 노래꾼이었다.
송창식은 용기를 내 윤형주, 이익근에게 트리오를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윤형주는 포크의 기본곡도 모르는 송창식이 달갑지 않아 거절했다.
그러나 송창식의 독특한 음악적 감성만은 인정, 결국 67년 11월, 세시봉 트리오를 결성했다. 몇 달 후인 68년 2월, 이익근의 군입대로 윤형주, 송창식은 트윈폴리오로 재탄생하였다.
이들은 12월, 드라마센터에서 팬들의 열띤 호응 속에 첫 리사이틀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노란색 음반이 특이했던 데뷔앨범은 펄시스터즈, 박연숙과 함께한 김인배 작ㆍ편곡집 .
수록된 상큼한 화음의 하얀손수건 등 6곡의 번안곡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여중고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경기여고 특활반의 초청을 받고 당시 2학년생 양희은의 노래반주도 해주었을 만큼 소탈했다.
69년 12월, 팬들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트윈폴리오의 느닷없는 해체발표에 경악했다. 이유는 집안의 반대 속에 활동하던 윤형주가 학업을 위해 경희대의대 본과로 학교를 옮기는 사태가 발생되었기 때문.
첫 리사이틀 장소였던 드라마센터에서 69년 12월21~22일 양일간 개최했던 공식 고별공연은 당시 이들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한다. 공연은 이례적으로 찬조출연 없이 둘만이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데뷔곡 하얀손수건을 부를 땐 수많은 10대소녀팬들이 울먹이며 따라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윤형주의 '이제 우리 트윈폴리오는 그만 해체하려 합니다'라는 짧은 고별사에 이어 송창식이 신중현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부르던 중 두 멤버가 부둥켜 안고 통곡, 장내는 순간 울음바다가 됐다.
부산팬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70년 1월15일부터 4일간 열렸던 해운대 관광호텔공연은 무려 6번째 비공식 고별공연. 팬들은 이들의 해체를 도통 인정하려 들지않았다.
MBC, TBC 등 방송들도 이례적으로 5차례나 고별공연을 재편집 방송하여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해체 6개월후인 70년6월, 오픈한 서울 명동 YWCA 청개구리 개관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윤형주, 송창식. 주위의 요청에 못이겨 1~2곡을 부르기로 하고 즉석에서 하얀손수건 등 히트곡을 불렀다.
''그러나 거듭되는 앵콜요청으로 동요메들리, 찬송가, 트로트 '눈물을 감추고' 등 장르를 파괴하는 레퍼토리를 1시간도 넘게 불러야 했을 만큼 이들의 인기는 사그러들 줄 몰랐다.
고별공연 직후 발표된 12곡이 수록된 독집 <튄폴리오 리사이틀-지구, JLS20372, 70년1월5일>음반은 76년, 80년 두 번에 걸쳐 재발매가 된 히트음반. 이중 70년 초판은 비매품으로만 한정발매 된 초희귀 음반이다.
트윈폴리오는 조영남과 함께 <크리스마스캐롤음반-히트, EL717, 70년11월5일>과 <조영남 리싸이틀쇼-유니버샬, KLH5, 71년9월15일>음반을 발표하는등 음악적 친분이 두터웠다.
''81년, 트윈폴리오는 10년전에 발표한 음반과 같은 레퍼토리에 송창식 작곡의 '우리'를 추가해 재결성 음반을 발표, 향수를 달래주기도 했다.
또한 82년엔 긴머리소녀, 편지, 축제의 노래 등이 수록된 금성사 판촉 카세트테이프를 내놓아 재결합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기도 했다. 88년12월엔 김세환과 더불어 도너츠판, 책자가 들어있는 <하나의 결이 되어> 박스음반발표와 더불어 롯데호텔에서 기념공연도 가졌다.
이때부터 세월이 흐른 요즘도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은 전국을 순회하며 올드 팬들을 위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마치 꺼진 포크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싸우는 전사들처럼, 트윈폴리오의 전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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