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빛만 봐도 어떤 음을 내야 하는지 안다”
송창식·윤형주, 대조적인 성격과 음색으로 완벽한 화음
李善珠 TOP CLASS 편집장 (sunlee@chosun.com)
20050803-통기타 해변축제(대천)송창식.윤형주-하얀손수건
송창식과 윤형주. 1968년 초 결성한 ‘트윈 폴리오’로 포크 음악의 새 장을 열었던 두 사람을 대천 바닷가에서 만났다. 지난 8월 3~4일 열린 ‘제1회 대천 통기타 음악축제’에서 윤형주(58세)는 사회자로, 송창식(59세)은 출연자로 한 무대에 섰다.
축제 마지막 날 저녁 8시, 행사를 30분 정도 앞둔 시각에 바닷가 카페에서 윤형주를 먼저 만났다. 윤형주는 연신 전화를 받으면서도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느라 바빴다.
송창식이 행사장에 나타난 것은 밤 10시가 넘어 축제가 거의 끝나 갈 때였다. 그와 트윈 폴리오는 피날레 즈음에 등장하기로 되어 있었다. 구석에 앉은 송창식은 기타를 뜯으며 혼자 리허설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묵은 인사를 나누느라 바쁜 다른 가수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송창식의 시간. 개량한복을 응용한 무대의상을 입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은 조금 헤벌린 특유의 바보 표정으로 양팔을 벌린 채 손을 흔들면서 무대에 올랐다. 순간 객석이 술렁댔다. “송창식” “창식아”라고 소리쳐 부르는가 하면 그냥 “푸하핫”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왜 불러> <한번쯤 말을 걸겠지> <담배 가게 아가씨> <고래사냥> 등 히트곡을 연이어 부른 그는 윤형주와 호흡을 맞춰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으로 마무리했다.
마주 앉은 송창식에게 트윈 폴리오 시절의 노래를 부르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불편하지요. 지금은 내가 너무 달라져 있어서.”
트윈 폴리오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유명한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윤형주는 연세대 의대생, 송창식은 가짜 홍대생이었다. 원래는 연세대 토목공학과에 다니던 이익균까지 세 명이 ‘세시봉 트리오’를 만들어 활동할 예정이었는데, 이익균에게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 남은 두 사람이 만든 게 트윈 폴리오다. 그들의 ‘교과서’였던 미군 부대 팝송 책에 ‘song folio’라고 적힌 것을 보고 ‘트윈 폴리오’(twin folio)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도 대조적인 쌍둥이(트윈)가 있을까? 송창식의 목소리나 창법이 거친 황야를 지나는 바람 소리 같다면, 윤형주는 포근하고 밝고 따뜻하다. “송창식 음악에서 흙냄새, 바람 소리, 힘이 느껴진다면 내 음악은 가정적이고 포근하다고 평론가들은 말하지요”라면서 윤형주도 이 점을 인정한다. 음악만큼이나 두 사람의 개성이나 삶도 대조적이다.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여섯 시간이라는 시차가 있다. 송창식이 매일 잠에서 깨는 시간은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다. 그 후로도 다섯 시간 동안 세상과 일절 접촉하지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두 시간씩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한다. 방 안을 뱅글뱅글 도는 운동으로, “자전과 공전을 같이 한다”고 설명한다.
운동이 끝나면 세 시간 정도 음악 연습을 한다. 동서양을 아우르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음악을 찾고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표현해 줄 사람이 없어 발표를 못하고 있단다. 특별한 일정이 잡혀 있지 않은 날이면 밤 10시쯤 미사리 카페 ‘록시’ 무대에 오른다. 그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아침 6시까지가 그의 주 활동시간이다. 휴대전화를 가져 본 적이 없는 그의 집에는 전화벨 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벨 소리를 모두 죽여 버렸다”고 설명했다. 운동이나 음악할 때 방해되기 때문이란다. 대신 응답기가 돌아간다. 마침 옆에 있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되는 소리를 들으면 직접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취재약속을 위해 전화했을 때 마침 그가 받았다. 행운이었다. “인터뷰요? 나를 만나려면 밤 12시가 넘어야 하는데…”라고 그는 말했다.
● 공연 전 김도향과 이야기를 나누는 송창식(왼쪽).
보통 사람의 삶을 도외시하는 그는 가수들 사이에서도 괴짜로 통한다. 술을 한잔도 안 마시니 그를 술자리에서 만나기도 어렵다. 어렸을 때는 4홉들이 소주를 한 병씩 마셨지만, 20대 초반 트윈 폴리오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딱 끊어 버렸다. 그 당시 가수들은 여자문제로 평판이 나빴는데, 그게 다 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왜 안 마시냐? 나가서 한판 붙자”는 사람이 많아 신조를 지키는 게 ‘고난의 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윤형주가 두 배로 마셔야 했다.
도인(道人)으로도 통하는 그는 청소년기에 노숙을 하면서 도를 터득했다고 설명한다. 일곱 살 때부터 곡을 쓰며 지휘자를 꿈꿨던 그는 서울예고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집에 레슨비를 달라고 손을 내밀 형편이 아니었다. 집에도 학교에도 돌아가지 않고 노숙을 했다. 움푹 패인 데가 있으면 들어가 잤다. 건물 꼭대기 계단참도 따뜻했다. 몸을 웅크린 채 숨을 길고 조그맣게 쉬면 추위를 참을 수 있었다. 훗날 가수 김도향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느냐며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배운 게 아니어서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더니 기공하는 친구를 데려왔다. 자신이 터득한 방법과 흡사했다. 그 후 한동안 도를 한다는 사람들과 교류했지만, 서로 높다며 재는 모습에 실망해 관계를 정리했다.
반면 독실한 기독교인인 윤형주는 사업과 사회봉사활동으로 바쁘다. CM송 제작자로, CCM(기독교 음악) 가수로, 사업가로 다양한 활동을 해 온 그는 “사업도 노래하듯 내가 낼 수 있는 음역과 창법을 지켰다”고 한다. 요즘은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본부, 한국 소아암협회 홍보이사 등 봉사활동이 그의 삶에 중심을 차지한다. “의사로 봉사하며 살지 못했던 게 부채(負債)처럼 남아 있나 봐요. 환자나 장애인, 집 없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요.”
2003년 미국 카네기홀을 시작으로 윤형주는 매년 불우이웃돕기 기금 마련 가족 콘서트를 열고 있다. 큰딸이 서울대 작곡과, 둘째 딸이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대 성악과를 나와 음악의 길을 걷고 있고, 둘째 사위 역시 성악을 전공했다. 한의사인 맏사위나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아들 역시 음악에 능하다. 가족 콘서트 때는 아내까지 모두 무대에 선다. 그는 이렇게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통기타 축제에도 아내, 둘째 딸과 사위, 장인까지 같이 왔다. 통기타 축제는 특히 그에게 의미가 깊다. 지난 3월 대천해수욕장에 세워진 그의 노래비 <조개껍질 묶어>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 8월 대천에 놀러 왔다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
● 공연 후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는 윤형주.
윤형주는 《성경》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매일 팩스로 보내 이를 책으로 묶어 낼 정도로 자상하고 헌신적인 아버지로 유명하다. 반면 송창식은 가족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게임 시나리오를 쓰느라 학교 다니기 힘들다고 하자 “지가 바쁘다는데 그만둬야지”라며 학교를 중퇴하게 했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사람의 음악적 인연은 끈질기다. 대학에 입학한 친구를 따라 홍대 잔디밭에 진 치고 있던 송창식은 세시봉에 진출, 클래식 기타를 치며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렀다. 팝송이라곤 아는 게 없을 때였다. 반면 윤형주는 중학생 때부터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끼고 살며 수백 곡의 팝송을 외우고 있었다. 세미 클래식을 하고 싶었던 송창식이 윤형주를 좇아 ‘전향’했다. 팝송을 번안해 부르면서 시작한 트윈 폴리오가 공식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1968년 2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2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그 생명력은 꺼지지 않는다. 요즘도 1년에 열 번씩 함께 공연을 다닌다. 공연 전 연습은 송창식 시간대에 맞춰 밤 12시 넘어서 시작되고, 윤형주는 시차 때문에 ‘병든 닭’처럼 되고 만다. 이 때문에 윤형주 아내가 “내 기계 다 망가진다”며 불평을 하곤 한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은 아직도 전무후무한 예로 꼽히고 있다. 송창식은 얼마 전 윤형주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고 털어놓는다. 방송에서 후배들과 함께 노래하게 됐는데, ‘윤형주 없이 될까?’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각각 전혀 화음이라 할 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절대음감을 가진 두 사람은 한 사람이 멜로디를 넣으면 즉시 한 사람이 완벽한 화음을 낸다. 윤형주는 이렇게 말한다.
“40년 가까운 관계 아닙니까? 우리는 눈빛만 봐도 어떻게 호흡을 맞출지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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