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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A04. [인간 문화재 송창식] 신문사 기고 칼럼

by 팬더54 2015. 1. 24.

글:    소리샘(김시우)

출처: 시애틀 7080 기타동호회

 

추억의 7080 음악 여행

 

<인간 문화재 송창식>

 

오늘 아침도 쓴 커피와 음악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스피커에서는 목탁소리가 깊은 산사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송창식의 토함산이 힘있게 밀려나온다. 그의 노래를 음미하고 있노라면 그의 노래 전곡은 그가 불러야만이 제 맛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함산>이외에도 그의 노래 〈고래사냥〉, 〈그대 있음에, 날이 갈수록, 사랑이야〉, 〈상아의 노래〉, 〈슬픈 얼굴 짖지 말아요〉, 〈피리부는 사나이〉, 〈우리는〉, 〈푸르른 날〉, 〈가나다라〉은 대중에게 널리알려진 명곡들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그의 노래는 대중이 그의 천재성과 의지를 따라잡지 못하여 돈이 되지 않아 상업 방송을 타지 않았던 노래들이다.

 

"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데서 눈 맞는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릴, 흰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릴, 잠만 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덩 들고 오리다,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눈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발짝 두발짝 멀리도 왔네 한발짝 두발짝 멀리도 왔"

 

<밤 눈>이란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새 내 가슴에도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다.

 

" 철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그것은 소리없는 사랑의 노래,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듣는다, 기나긴길 혼자 걸으며 무척이도 당신을 그리곤 했지, 소리죽여 우는 파도와 같이 당신은 흐느끼며 뒤돌아 봤지, 철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 지난 바닷가> 듣고 있노라면 바쁜 일상에 쫓겨 늦 휴가를 떠난 도시인의 고독함과 여유로움이 혼재한 아련한  지난 날의 추억이 밀려오며, 눈을 감으면 낯선 이가 마주 하여 모래 벌판을 걸어오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셔플 풍의 가벼운 드럼 반주와 기타 소리만으로도, 찾는 이 뜸하여 소리 죽여 철썩거리는 철 지난 바닷가의 고요함 속에서 용솟음치는 그 무엇을 끄집어 내는 송창식의 노래에 흠뻣 빠지게 된다.

 

<, , 눈물>을 듣고 있노라면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도 애절한 사랑에 코 끝이 찌릿해질 것 같다. <나그네>를 눈감고 들어보라 어느 새 고향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나를 품는 것 같다.

 

'비창식' 이란 별명도 있는 송창식은 <비의 나그네> <비와 나> <비 오네> <밤비> <비가 오늘 날처럼><창 밖에는 비가 오고요>등의 비를 소재로 한 곡을 많이 만들었다. <나그네> <비의 나그네>를 눈을 감고 들어보라, 이역만리 고향을 떠나 비가 많은 시애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에 비를 적시며 고향길을 걷고 있는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브래스 밴드 트럼펫 주자였던 나는 도서관에서 학과 공부를 마치고 음악실로 가서 며칠 후에 있을 고등학교 브랜드 밴드 경연대회에서 연주할 가곡 메들리를 연습했다. 그 가곡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내가 트럼펫 독주를 맡았던 <성불사>였다.

 

"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1932년 미국 유학 중인 홍난파가 "신인문학" 21(1935.1) 수록된 시인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에 곡을 입혀 만든 가곡이다. 이은상이  황해북도 사리원시 강성동 정방산(正方山)에 있는  성불사에 갔다가 풍경소리마저 깊은 잠에 들은 주승을 방해할까 숨 죽이고 있는 산사(山寺)에서 느끼는 고독하지만 평화로움이 베어나온다.

 

가곡은 보통 속도의 4분의 3박자, 가단조로 되어 있으며, 작은 세도막 형식의 유절가곡(有節歌曲)이다. 반주의 음형은 처음부터 끝가지 펼친 화음형태로 되어 있으며, 반주의 화음은 주요 3화음으로만 되어 있다. 선율선의 기복이 적고 노래의 흐름이 완만하여 외향적인 감동보다는 내면적으로 축적된 감동을 불러일으켜 준다.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가 미국 유학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향수의 소산물이 아닌가 싶다.

 

                                  

 

홍난파에게 성불사가 있다면 송창식에게는 <선운사>가 있다. 이 노래가 포스팅 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 이런곡을 명곡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는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든다, 송창식과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는 우리는 진정 행복하다." 라고 누군가 적어놓고 있다. 이렇듯 송창식의 노래는 우리를 아련하고도 먼 추억 속으로 이끈다. 집집마다 밥 익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고향 마을에서 어머니의 인자한 웃음이 들리는 듯한 동화 같은 시골 풍경,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듣고 있으면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은 음악이 바로 송창식의 노래다.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깊은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의 송창식, 노래로 사람들과 만나는 게 편하다는 송창식, 그래서 그의 날숨 하나 하나에 음악을 담아 한 시대를 풍미하고 그 시대를 너머 모습마져 다른 사람이 되버린 그가 변함없이 노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작업실로 찾아간 이에게 한 말이다.

하루라도 악기 연습과 목소리, 음정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세월이 흘러도 제가 예전과 똑같이 노래할 수 있는 건, 매일 하루에 3시간씩 연습하기 때문이죠.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려면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죠
.”

사실 3 핑거링 기타 주법을 그 처럼 잘 연주하는 사람이 없다. 송창식이 작업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녁 8~9시다.  그가 한창 활동할 때는 통행금지 시간 이후에 혼자 조용히 노래하고 작곡하던 습관이 돼서 지금까지 낮과 밤을 거꾸로 살고 있다고 한다. 윤형주가 시애틀에 송창식가 같이 못 못 온 이유가 밤과 낮을 자신과 달리하는 송창식과 공연을 하기 힘들다는 말이 우스개 소리는 아닌가 보다.

 

송창식은 저녁에 작업실에 도착해 3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다시 퇴촌의 집으로 돌아가 이것저것 하다가 아침 6시나 돼서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그의 기상시간은 오후 2. 일어나서 화장실에 앉아 책을 보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저녁 6시경에 집에서 나와 다시 구리의 작업실로 향한다. 이런 그의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두고 사람들은 그를 기인이라고 하지만, 젊은 시절 이른바 '밤도깨비'란 별명을 가졌던 내가 나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송창식을 일반적이지 않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송창식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은 그가 약속과 의리를 돈보다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송창식에게는 일반적이거나 특별한 것의 구별이 없다. 예를 들어 방송 출연 섭외가 왔는데 친구와 선약이 있다면 섭외 PD에게 출연 요청을 거절한다. 일반 가수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세상사는 일 중에특별히중요한 일이란 건 없다, 누가 먼저 약속을 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에 대한 개념 역시 그를기인으로 불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그에게이란 그저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는 문제일 뿐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많은 돈을 벌고 싶지도 않다. 사람들은 그에게가난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한 번도 돈이 모자라거나 가난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부분에서 돈이 없다면 불편하겠지만 집 있고 차 있고 입을 옷과 먹을 게 있는데 더 필요한 게 뭐냐는 것이다.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좋은 기타도 돈이 있으면 구입하지만, 만약 돈이 없다면 갖고 싶어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 그는 한평생소유욕이란 걸 모르고 살아왔다고 한다.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은 그의 함박 웃슴이 이를 보여준다

 

작곡과 성악을 독학하던 송창식은  우연히 찾아간 명동의 음악감상실세시봉에서 팝송을 부르는 조영남이 부르는 팝송을 접하고 대중음악에 빠지게 된다. 그가 만든 노래가 족족 히트를 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AFKN에서 나오는 블루스 음악을 듣고 자신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에 밤새 눈물을 흘리며 지새웠다. 외국 아마추어들이 하는 블루스 음악조차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것을 경험한 그는 다양한 음악적 탐구의 차원에서 아마추어 국악인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 역시 재능이 무척 뛰어난 것을 깨우친다. 그는 그 때까지 공부해왔던 이론과 실기를 모두 버리고()’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그만의 음악적 이론을 구축했다.

 

                          

 

 

2013년에서야 정부는 송창식을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보관 문화훈장( 文化勳章, Order of Culture Merit)을 수여한다. 금관, 은관, 보관, 옥관, 화관 문화 훈장 중에 3등급이다.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와 문화적 기능을 지닌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기능을 후계자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 문화재 제도가 있다. <대중가요 인간 문화재>가 있다면 그가 아니겠는가.

 

그가 없었다면 과연 풍토적인 대한민국 고유의 대중음악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금관 훈장도 아니고 3등급인 보관 훈장이라니. 그래도 돈과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음악 자체인 그가 훈장을 받는 모습은 천진난만하기 이를 때 없다. 돈과 명예에 대한 소유욕을 모두음악에 대한 열정과 맞바꾼 듯한 그의 음악을 들으면 여전히 행복해지는 것은 웬만해선 따라잡기 힘들고 닮을 수 없는 행복한 음악에 젖어있는 그의 삶에서 나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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