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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가수송창식 '소리 그 너머의 세계를 찾아서'

by 팬더54 2015. 8. 19.

 

 

 

 

7월, 한국에서의 지난 며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주회를 마쳤고 협연도 한 차례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이번 인터뷰에서 떠오른 새로운 화두로 가득 차 있었다. ‘음정과 박자’,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 두 가지는 어쩌면 소리와 시간이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겠다.

음악이라는 것이 소리와 시간의 교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나는 순수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다’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면서도, 음악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이 두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럽다.

 

7월 14일, 미사리의 늦은 밤. 사람들에게 종종 괴짜, 혹은 기인이라 불리는 가수 송창식을 만났다.

그런데 그를 만난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사람을 그저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껏 쌓아온 음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이론은 상당히 논리적이었고, 가끔 숨이 차오를 정도의 분석적인 전개는 강한 설득력을 발휘했기에 길고도 큰 울림이 있었다.

몇 년 전, 레온 플라이셔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들은 이야기가 지금껏 강하게 남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음악에 대한 나의 기본자세 자체를 흔드는 강력한 화두를 그가 던졌다는 사실이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가 지금도 ‘연습’을 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도 ‘꿀성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방법이라거나 손끝이 살아 있는 기타 연주의 비법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송창식의 수련에서 기타와 노래는 ‘결과물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좀 더 큰 세계를 거닐고 있었다. ‘소리’와 ‘시간’, 그것을 다루기 위한 전략적 고찰이 그의 인생 전반에 퍼져 있었다.

 

그와의 만남 이후, 질문해본다. 음악은 과연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

나는 충분한 고민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가? 

 

수련의 진화_ 1+1=2에 대한 물음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시초를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이 들여온 찬송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때, 가수 송창식이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나 똑같이 서양의 문화에 ‘매료되어’ 서양음악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음악의 기원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성된 ‘음’과 ‘박’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소화하고 있는 것일까?

이전 칼럼에서 만난 현대무용 안무가 차진엽은 해외 무용수와 우리 무용수의 다른 박자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송창식은 동서양 ‘음’ ‘박’의 개념이 근본부터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태초에 동서양 음악은 비슷했어요. 이후 서양에선 음악이 수학과 물리학에 의해 정리되기 시작했죠.

1초당 몇 헤르츠(㎐)가 발생하는지 연구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평균율을 갖고 절대적인 ‘음의 위치’를 만들었어요.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음’의 정의입니다. 예를 들어 F#과 G♭은 수치상 다르지만, 화음 안에서는 같은 높이를 일컫는 음정으로 분류해 세계 공통의 12음계를 만든 겁니다.

음과 음 사이 관계엔 수학 개념이 적용되죠. 또 서양의 ‘튜닝’이 우리에게 ‘음정’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한국에선 ‘튜닝=음정’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튜닝’은 ‘포지션(위치)’의 개념이고, 음정은 ‘음의 정도(범위)’입니다. ‘작곡’을 뜻하는 ‘composition’을 보면 ‘com-’ ‘position’, 즉 포지션들을 조합하고 합쳐놓은 걸 의미하죠.

포지션의 이동을 단조롭지 않게 하려고 화성학의 규칙들이 생겨났고요. 이렇게 복합적인 포지셔닝으로 만든 것이 서양음악의 정체입니다. 그러니 ‘그 포지션(위치)’를 ‘음정(범위)’로 받아들여 연습하는 건, 제대로 된 연습이 아닌 셈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음과 박의 윤리’라는 과정은 왜 대학에 없는 걸까. 음악사를 공부하기에 앞서, ‘소리’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고, 17년간 음악학교를 다녔지만, 가장 근본적인 ‘소리’에 대한 화두를 이제야 대중음악의 거장으로부터 건네받게 됐다. 음악은 감성이 아닌 지성의 작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지금도 혹여 그의 말을 부족한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음’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게 송창식의 이야기는 과히 파격적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송창식은 어떤 계기로 이런 구분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어릴 때부터 있던 음악적 재능을 굳게 믿었던 그는 군대에서 미국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음악을 접하고선 ‘엉엉’ 울며 속상해했다. 그동안 자신이 ‘잘못 배웠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이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한국적 요소를 노래에 가미하기 시작했다.

 

“동양권에서 다뤄지는 ‘음정’은 한 ‘음’ 안에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국악 연주를 떠올려보면 한 ‘음’으로 호흡을 계속 지탱한다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는 개별의 1개음이 아니죠. 관념적으로 서양의 도·레·미·파·솔·라·시·도와 성질이 다른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음악의 음계인 궁·상·각·치·우는 서양음악의 계이름과 비교되곤 하지만 실제론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녔죠. 박자도 마찬가지예요.

수학에서 1과 2의 차이를 이야기 할 때, 서양에서는 1+1=2, 즉 똑같은 것을 두 개가 만났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동양에서 2는 하나의 존재가 둘로 나누어진 것으로 정리됩니다. 1과 2의 양이 같을 수도 있다는 거죠. 수를 세는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박자를 세는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소절에 4박을 치라고 했을 때, 1박을 동일하게 네 번 치느냐, 아니면 한 소절이 단지 4개의 박으로 이루어졌느냐의 차이는 다른 정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양음악에서는 4박, 동양음악은 3박을 기본으로 한다는 차이도 있어요.”

 

평소 친구들과 같은 연주를 봤을 때, 취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인과 미국인의 의견이 판이하게 갈리던 것이 혹시 이런 음과 박의 정서 차이에서 온 것일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연주자들은 토속적 색채가 강한 버르토크나 코다이엔 강하지만, 바흐나 베토벤 작품엔 능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음’ ‘박’을 정확하게 꽂으면서 가지고 노는 개념 아래 여러 음악가의 연주 클립을 보고 나니, 그야말로 ‘멘붕’이다. 이제껏 ‘뭔가 콕 집을 수는 없지만 2%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연주의 음·박이 모두 정확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창식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테크닉의 개념을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음과 박을 다루는 기능적 능력이 결국 궁극적인 테크닉의 존재 이유이자 목표인 것이다. 그가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노래를 잘하고 기타를 잘 치기 위함이 아니라, 음·박의 포지셔닝을 정확히, 계산한 대로 구현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동서양의 음악적 표현을 모두 잘하고 싶어 하는, 아주 욕심 많은 뮤지션이니 말이다.

 

표현을 위해 음·박을 밀고 당길 때도 무작정 ‘느낌대로’ 하는 것과 계산을 통해 나올 수 있는 능력은 분명 다르다. 음이나 박을 살짝 늘리는 순간에도, 그것을 미세하게 나누어 표현을 계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리의 마스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그가 바라는 경지이기도 한데, 신체적으로 구현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박자의 밀고 당김은 기본적으로 각 문화에서 비롯된 고유 산물이기에, 그는 몇몇 명연주자를 제외하고는 이 차이를 쉽게 넘나드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 경지에 다다랐든 아니든, 분명한 방향과 목적을 지니고 수련하는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의 수련은 질과 양에서 모두 극명하게 차이 나게 마련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처럼 수련할 수 있는지 물었다.

 

“서양음악을 제대로 할 거라면 ‘내가 틀렸다’라는 개념에서 시작해야 해요. 나의 배경과 본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그때부터 진짜 시작할 수 있죠. 그런데 정작 최고 일류라는 아이들은 남의 것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습만 하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념, 즉 아이덴티티를 먼저 만들고 연습하는 것과, 연습하다가 개념이 생기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거든요. 서로의 다름을 알고 시작한다면… 어쩌면 그들을 이길 수도 있어요. 또 자신의 일 앞에선, 펑펑 울며 스스로 자신에게 신랄하게 해야 해요. 그 분야에서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 해야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다고, 부족한 지점에서 시작하면 안 돼요.”

 

그의 말에 문득 중독 치유의 12단계가 떠올랐다. 그 첫 단계는 ‘내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된

지점에서 시작했다고 스스로 ‘인정’해야, 온전한 발전이 뒤 따를 수 있다. 심리적 터닝 포인트, 그 ‘인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수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수련_ 음계 그 너머의 소리를 위해

 

 

 

 

광활한 이상을 이성적인 논리로 구현하려는 송창식의 시선은 내게 무척이나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익히 알려진 그의 일과를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정확히 어떤 연습을 하는지, 나도 해볼 만한 것인지… 혹시 그렇게 연습하면 언제나 어렵게 느껴지는 독일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말이다.

 

“언제든 원하는 박자와 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습을 합니다. 메트로놈의 다운 비트에 박자를 맞추고, 포지션 익히는 연습을 하죠. 내 몸이 그것을 확실히 짚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음도 비슷합니다. 정확한 위치를 ‘땅’ 치는 힘으로 모든 음을 시작해야 돼요. 밀면서 그 음에 들어가면 더 가거나 덜 가죠. 공명과 힘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훈련해요. 이 기본적인 것들이 숙달되어야 우리가 규정한 음계 그 너머, 모든 소리를 가져갈 수 있거든요. 결국 사람이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소리’에 달려 있지요.”

 

그의 이야기에서 하이페츠가 학생들에게 2년 동안 스케일만 연습시키고, 제이미 라레도가 하루 2시간씩 스케일만 연습하는 것이 송창식의 수련법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5, 6학년 시절에 아무런 곡도 배우지 않은 채, 메트로놈에 맞춰 스케일만 연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지옥같이 느껴지던 시간인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그때 울고불고 반항하던 나를 붙잡고 매일 6시간 이상 스케일과 롱톤만 연습시킨 엄마에게 큰 절을 올려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수련_ 미지의 세계를 향한 초월적 탐구

오래 전 친한 친구와 이틀에 걸쳐 싸운 적이 있다. 남들에겐 다소 황당한 내용이겠지만 그때 우린 심각했다.

그 주제는 다름 아닌 ‘음악에서 선호를 넘어, 수준이 존재하는가’였다.

 

친구는 “모든 것은 개인의 취향”이라 말했지만, 음악을 업으로 생각하려던 내겐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연습은 왜 하는데!”라며 시작된 논쟁에서 떠오른 화두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 신념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그때의 분노와 함께 말이다.

 

음악은 미지의 세계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것을 절실히 느끼기에 ‘좋은 음악’과 아닌 것을 정의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수련을 통해 내가 정의하는 ‘좋은 음악’을 더 설득력 있게

구현하고 싶기에 ‘오픈 마인드’와 ‘신념’의 경계에서 늘 고민을 거듭한다. 이 고민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싶기도 한데, 1만800일이라는 기간을 정해두고 명상과 입선, 그리고 몸의 훈련을 날마다 거르지 않는 송창식을 보면서 음악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인내심과 논리적·초월적 탐구심을 갖고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날의 만남 이후, 오래 전 다퉜던 친구의 주장을 반박할 논리가 하나 더 생겼다. 음악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음’ ‘박’의 정확함과 미세함에서 그 정도가 갈린다는 것이다. 더불어 송창식이 던진 화두가 나와 친구들에게 ‘음악’ 그 자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도록 이끌었다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잡을 수 없는 별을, 그래도 잡아보겠다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하지만 고귀한 도전을 하는 우리 모두를 북돋아주고 싶다.

 

  

가수 송창식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로 데뷔 했다. 1970년 솔로로 전향, 지금까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히트곡으로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한번쯤’ ‘왜 불러’ ‘창밖에는 비 오고요’ ‘사랑이야’ ‘가나다라’ 등이 있다. 제3회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2012),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2015)을 수상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라이브 카페 쏭아(Ssonger)에서 매주 화·수·금·토·일요일 밤 10시에 노래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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