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평론가 이문구의 인물탐험] 조영남 (9/21)
2002년 8월 1일 방송 송창식-Sloop John B(그리운고향)
『펄 시스터스와 제가 트리오를 만든 걸 아시나요』
『세시봉에 모이는 젊은 무리 중에서는 내 가 비교적 나이가 위였지요. 대부분 동생이 었어요.
윤형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동신교회를 같이 다니면서 성가대도 같이 한 사이예요.
얼마 전에 가수 김창완씨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에 윤형주가 나와서 내 얘기를 하더군요.
성가대 뒷자리에 선배 하나가 있었는데, 폼은 더럽게 잡으면서도 맨날 자기 헌금을 내가 반을 빼앗아 내고,
대학엘 올라가더니 어디서 통기타 하나를 구해 들고 다녔는데, 만지지도 못하게 하더라.
자기가 전도양양하고 휘황찬란한 세브란스 의대생에서 집안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가수가 된 것은 순전히 조영남의 영향이었다 …하하하…그러더군요.
내가 윤형주 헌금을 반 나누자고 해서 헌금 한 건 사실이에요.
지금도 만나면 그 때 꿔 간 헌금 돈 내놓으라고 해요.
그런데 생각 해 보세요. 어차피 하나님한테 드리는 건데 , 지가 내나 내가 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송창식은 참 희한한 놈이었지요. 과묵하고 황당한 인물이었어요.
이루 말할 수 없 이 남루한 옷차림이었는데 얼굴은 허여멀게서 거렁뱅이로는 또 보이지를 않았거든요.
항상 기타를 가슴에 부여안고 다녔지요. 레스토랑 가수로 데뷔할 때 부른 노래도,
뜻밖에도 오페라 「사랑의 묘약」 가운데 나오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인거예요.
생전 처음 듣는 창법이더군요. 오페라 창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행가 창법도 아닌,
송창식 특유의 창법이더군요. 아마 지구상에서 그런 창법은 송창식의 창법 이 유일무이할 겁니다.
야 이거 선천적인 노래꾼이구나 직감했지요. 그나저나 노래는 그랬지만, 나머지는 오리무중이었지요.
초콜릿을 물에 말아먹었다는 등 하면서 제법 무슨 귀족 행세를 하는가 하면 겨우내 팬티 하나로 버티는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송창식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내겠다는 시도를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어요』
가장 친하게 지냈던 사람은 김민기였다.
조영남이 음대생이면서도 낮에는 주로 美大( 미대)의 서클룸이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김민기는 미대생이면서도 노상 기타만 뚱땅거리고 있었다. 김민기하고는 지금도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낸다.
김민기는 피해 다니는 생활을 하며 고생하다가 연극으로 진출했고 요즘은 뮤지컬로 성공했다.
『그밖에도 일일이 손꼽기가 어렵지요. 배 인순-인숙 자매 보컬인 펄 시스터즈도 그 때 만났고,
아직까지도 여성 듀엣으로 그들을 능가하는 그룹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펄 시스터즈하고 나하고
트리오를 만든 적 이 있다는 것 혹시 아세요. 아는 사람이 별 로 없지요. 왜냐? 무대에 한 번
서보지도 못하고 끝나 버렸거든요. 우리 셋이 부르는 노래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환상 그 자체였지만,
아무도 알아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꾀죄죄한 내 행색과 몰골이 결정적이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때 검정 물들인 야전 점퍼에 워카를 신고 다녔는데,
가뜩이나 키도 작고 못 생 긴 얼굴에 행색마저 그 모양이었으니 사람들은 노래를 듣기도 전에
관심조차 기울이지를 않더군요. 저 얼굴로 뭐가 되겠냐는 투였지요. 나 때문에 배인순 자매는
한국 여성의 평균을 훨씬 넘는 늘씬한 몸매에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덩달아 덤터기를 쓴 셈이었지요.
아무튼 여기서 다 얘기할 수는 없고, 그 무렵 한창 청년문화다 뭐다 , 청바지에 통기타,
생맥주가 새로운 청년 문화의 상징이다 뭐다 유행했는데, 말하자면 그때 그 풍조를 이끈 그룹이
우리들이었던 셈이지요. 더 알고 싶으시면 내 책 「놀 멘 놀멘을 보세요. 거기 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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