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평론&기사 (197)
가객 송 창식님을 사랑하는 홈페이지
당대 최고 연주인들 이끌고 록아티스트로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52) 송창식과 석기시대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최고의 연주인들을 기용해 송창식이 제작, 발표한 음반 중 하나인 〈’87 송창식 참새의 하루〉(한국음반) 86 송창식 참새의 하루 1986년 11월 기획연재 :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포크송과 그룹 사운드, 요즘 말로 포크와 록은 다르긴 다르다. 1970년대까지 전자의 주요 무대는 생음악 살롱과 방송이었고, 후자의 주요 무대는 미8군 무대와 나이트클럽이었다. 그렇지만 포크송 가수가 작사가 및 작곡가로서, 그룹 사운드는 연주자(및 편곡자)로서 양쪽이 제대로 만난 모범적 경우가 있는데, 1970년대 말 송창식과 ‘석기시대’, 이장희와 ‘사랑과 평화’가 좋은 예다. 오늘은 전자에 초점을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통기타 1세대 & 7080붐의 주역, 트윈폴리오[1] '두장의 악보, 7080 포크송 시대를 열다' 글 l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저널리스트) 사진 01)트윈폴리오 리사이틀(1968년 12월22일-23일) 드라마센터. 사진 02)트윈폴리오 데뷔음반 대표곡 '하얀 손수건'이 담긴 당시 음반 재킷. 사진 03)트윈폴리오, 조영남, 신중현. 이들의 등장은 곧 가요팬들을 기존 층과 10대 층으로 분리시켰다. 악보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60년대 후반, 미8군으로부터 간간히 흘러나오는 악보를 '송 폴리오(Song folio)'라 했다. 아울러 '트윈폴리오(Twinfolio)'란, '두장의 악보'란 뜻이다. 이 '두장의 악보'로부터 70년대를 휩쓴 포크송시대, 그 통기타 붐이 시작되어 ..
고2때 받은 싸인입니다. 친구들이 인근 대학축제에 송창식님이 왔다고 하여 구경하러 가서 받은 것입니다. 창식사랑 한상우회원님이 제공한 사진입니다.
송창식1집['75] - 03 밤눈
[문화일보뉴스 2004년]안도현은 ‘그의노래’에 왜 가슴을 칠까 안도현은 ‘그의노래’에 왜 가슴을 칠까 송창식 시인 안도현·이문재·박철씨…. 이제 40줄에 들어선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시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술자리에서 부르는 노래가 비슷한 시대의 노래들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 이씨의 애창곡은 가수 송창식씨의 노래 ‘선운사’다. 박씨는 가수 정태춘씨의 노래 ‘서해에서’를 애절하게 부르는 것이 특기다. 안씨는 송창식씨의 모든 노래를 부른다. 역시 40대인 중견소설가 신경숙씨와 시인 조은씨가 몇년전에 나왔던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 삽입곡으로 송창식씨의 노래 ‘밤눈’을 추천했다는 사실은 문단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다. 이 40대의 한국 문인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송창식, 정태춘, 김정호..
신동아 2001년 4월호 [가요비사]국가대표 가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분명한 가수, 불분명한 인간 송창식 송창식은 윤항기 이상으로 가요사에 남긴 업적이 지대한 인물이다. 윤항기가 록 출신이었다면 그는 통기타 포크음악이 배출한 MBC 가수왕이었다. 포크의 거성이었던 것은 물론 ‘토함산’이나 ‘가나다라’가 입증하듯 포크와 국악의 접목을 시도한 개척자였다. 가수로서 송창식은 이처럼 분명한 존재였지만 당시 ‘인간 송창식’은 정녕 알다가도 모를 불분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를 본 공연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막말로 하자면 ‘괴물’이고 좋게 말하면 기인(奇人)이었다고 할까? 자기 좋을 대로, 멋대로 살아갔고 원체 ‘어벙’했던 까닭에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최성일씨는 “우선 어떻게 해서 가요계에..
오소리... Old music & nostalgia 에서.. 트윈폴리오 장 르 : 포크 데뷔/결성 : 1967년 활동 시기 : 1960년대 ~ 1990년대 멤 버 : 송창식, 윤형주 국내'에서 최초로 세대간의 경계선을 그은 음악 장르는 포크다. 포크 음악 부흥(Falk Revival)을 통해 포크록이란 장르를 탄생시킨 이 미국의 민요는 비록 그 뿌리가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그 취지만은 살아남아 '70년대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뿌리 내리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 그리하여 운동권이란 이름의 민주 투쟁과 더불어 음악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맥주와 청바지, 통기타로 상징되는 젊은 문화의 박제가 되었다. 포크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전, 우리의 대학생들은 음악 감상실을 통해 자웅을 겨..
반상에 놓인돌이 네 마음이냐 내 마음이냐 희어서 뉘 뜻이며 검어서 뉘 뜻이냐 (후렴)헤이 헤이 헤이 어울어보자 83송창식-B02.반상에놓인돌이(故정창현7단) 국내 최초의 바둑 가요 의 가사 가운데 1절이다. 송창식 작사 . 작곡 노래 . 83년봄 발표됐다. 아니, 송창식이 바둑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고? 축이나 제대로 알고 바둑 노래말을 만들었단 말이냐.. 만나보기전에는 필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둘사이에 이미지 오버랩이 좀체 이뤄 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둑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정은 대단했다. 애정만이 아니다. 솜씨도 녹록치 않다. 웬만한 1급들이 가볍게 알고 덤볐다가는 큰코다칠 정도의 실력 이다. 바둑은 그가 젊었던 시절 음악만으론 채울 수 없는,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대한 휴식처였다...
[문화칼럼]세상이 따뜻해지는 말 ‘우리’....장영희 1991년 대학가요제 송창식-우리는 [동아일보 2005.09.06 03:03:08] [동아일보]무심히 라디오를 켜니 오랜만에 가수 송창식 씨의 ‘우리는’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작년에 가르친 ‘번역연습’이라는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단편소설 영역을 시킨 적이 있다. 그중 한 문장에서 ‘우리 남편은 의사인데요’라는 대목을 어떤 학생이 ‘Our husband is a doctor’라고 번역했다. 무심히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지만, 결과는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즉 일부다처제에서 한 남자의 부인들이 자기들의 남편에 ..
가수 송창식씨 대국기보 2005.03.05 가수 송창식씨 대국기보 한국기원 발행 81년 바둑지에 왕년의 가수왕 송창식씨의 기보가 있기에 올려 봅니다. 송창식씨의 기력은 당시 아마 2단 칫수는 다섯점 바둑으로 당시 칠단이던 정창현 프로기사 님과의 대국보 입니다. 출처 : 타이젬 > 기보게시판 주제분류 : 바둑 / 사용자Q&A 한국기원 발행 81년 바둑지에 왕년의 가수왕 송창식씨의 기보가 있기에 올려 봅니다. 송창식씨의 기력은 당시 아마 2단 칫수는 다섯점 바둑으로 당시 칠단이던 정창현 프로기사 님과의 대국보 입니다.
소 개 국민가수라 불리우는 송창식씨 포크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30여년동안 걸어온 그의음악세계는 성악, 팝송, 포크, 트로트에서부터 국악적 요소 가 녹아든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실로 형형색색의 음악을 한 송창식씨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읍니다..가수들 조차도 노래잘하는 가수로 인정을 받았던 송창식. 그가 들려준 서정적이고도 신명나는 노래가락들에 자유로왔던 70년대 젊은이들은 없었다. 명 짧기로 유명한 대중가요계에서 그의 질긴 음악생명력은 무엇보다 더 모든 계층을 포용한 편안한 노래가락에서 얻어졌다. 또한 바보스럽게 히죽 웃는 모습은 그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함을 주었다. 1948년 2월 20일에 인천에서 태어난 송창식씨는인천중학 2학년때 영화 를 단체관람을 했는데 클래식의 아름다움에 넋..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송창식 록시(Roxy)에서 만난 영원한 자유인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Live 미사리'는 하남시 한강변의 미사리 카페촌에서 라이브가수로 직접 활동중인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코너로, 그 첫번째로 가수 송창식을 선정 했다. ''''1968년 윤형주씨와 함께 '트윈폴리오'라는 그릅사운드로 첫 데뷰 이래 36년째 가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송창식씨와의 만남은 5년간 전속으로 출연중인 카페 '록시(Roxy)'에서 이뤄졌다. ▲ 송창식1 ''초겨울의 잔잔한 한강과 강 건너편의 구리시 일대의 아파트촌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록시'앞의 주차장에는 밤 10가 되었지만 30여대의 승용차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다. 20여미터의 높다란 둥근 천정..
2004년 12 월호 송창식, 한성숙 부부의 독특한 결혼생활 28년 노래하는 도인 밤 10시. 미사리 카페촌은 아직 한낮이다. 청춘은 갔어도 음악은 늙지 않는 법. 송창식의 ‘푸르른 날’은 여전히 푸르고 시리다. 살포시 감은 눈, 적당히 술에 취한 듯 흥에 겨운 송창식표 얼굴도 그대로다. 소나기 퍼붓듯 쏟아지는 팬들의 박수소리를 뒤로하고 그가 카페 뒤편에 있는 출연자 대기실로 향한다. 밤늦은 시각인데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인터뷰는 야심한 시각에 대기실에서 이뤄졌다. 인터뷰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는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보이차를 기자에게 끊임없이 따라주면서 마셨다. “석 달 전부터 마시기 시작했어요. 이 차가 잇몸 건강에 좋대요. 요새 제가 잇몸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있거든요. 잇몸..
[70년대부터 현대까지의 통키타 문화 흐름] 대학생활의 상징 ― 통키타 통키타란 무엇일까? 여섯줄의 악기.. 올림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는 소리.. 포크음악.. 김광석.. 대학문화... 통키타라하면 많은것을 떠올리게 된다. 기타의 역사는 한마디로 클래식 기타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통키타 또는 일렉기타(Electric guitar)는 시대의 부산물이며 특히 서민들 즉 대중들이 노래와 춤을 즐길 때 흥겹게 해주기위한 반주악기로써 발전해 왔기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통키타(Acoustic guitar)와 일렉기타(Electric guitar)가 훌륭한 연주가들과 작곡가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연주용 악기로 발전하였다. 기타는 크게 머리(Head), 목(Neck), 몸통(Body)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타..
-쌩쌩토크- “나이 먹었네 하며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친구들 보면 참 안타까워”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포크 빅3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세명이 모이면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한다.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식사를 하며 나눈 이들 3명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윤형주(이하 윤) : 우리 직접 만난 건 오래간만이지 아마. 전화는 해도 자주 만나지도 못해. 워낙 창식이의 생활패턴이 남달라서. 송창식(이하 송) : 그래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있어. 절대 바꾸지 못해(웃음). 이젠 늙어서 그런지 사진촬영도 참 힘드네. 정말. 김세환(이하 김) : 우리도, 팬들도 다 나이가 들었지. 아줌마가 뭐야. 손주 본 할머니들도..
[99 포크 페스티벌]다시 듣는 "통기타 30년" 포크송이 추억의 노래로 되돌아 온다. 3선개헌(69년)과 10월유신(72년)으로 숨막히던 70년대. 젊은이들은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로‘무장’하고 분노와 설움,희망과 낭만을 섞어 노래를 불렀다. 그게 포크 송(Folk Song)이다. 포크송이 이 땅에 소개되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 그들은 ‘물 좀 주소(한대수)’하며 자유를 외쳤고 긴밤 지샌 ‘아침이슬(김민기)’에 영롱한 희망을 그렸다. 또 한켠에서는 탄압을 비켜가느라 ‘하얀 손수건(트윈폴리오)’을 흔들었다. 동시대 청년이었던 최인호는 이를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다시 뭉쳐 한국포크 3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30주년 기념잔치인 ‘99포크 페스티벌’을 연다. 첫마당으로 ‘낭만의 혁명, ..
가요의 역사 1. 대중 가요의 등장 ''''우리나라에 대중가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 '이 풍진 세월'로 잘 알려진 '희망가'로 소개된 곡이 음반화 되면서 부터이다. ''그후, 영화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의 를 거쳐,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한을 잘 표현한 이난영의 과1930, 40년대 남인수의 ,등이 우리 대중가요사의 초창기 곡들이라고 할 수 있다. ''2. '포크'의 시대 - 1970년대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 폴리오'를 결성한 송창식과 1970년 '아침 이슬'로 데뷔한 양희은은 1970년대 포크 음악의 대표적인 가수들이다. ''이 당시 노래들을 비평하자면, '트윈 폴리오'라는 그룹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우리의 노래가 아닌 외국 노래의 번안곡이 우리 포크 음악의 대부분이..
긴급조치, 광주 그리고 청년문화 대학가와 다운타운의 음학홀을 거점으로 융기했던 통기타와 밴드의 사운드는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을 밀어내고 마침내 주류의 권좌를 차지했다. 청년의 문화가 드디어 미8군 출신의 스탠더드 팝과 트로트로 대변되는 어른의 문화를 굴복시킨 것이다. 그것은 비단 대중음악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이른바 4.19 세대의 작가와 비평가들은 보수적인 문단을 재편했고 최인호는 으로 새로운 세대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이 신조류의 극점은 1975년 하길종 감독의 영화 이다. 종래의 톱스타를 전혀 고용하지 않은 이 박재당한 젊음의 여화는 송창식이 담당한 영화 주제가 와 으로 하여금 차트 넘버원의 행진을 거듭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1차 혁명의..
또 다른 언더그라운드, 포크 주류도 반주류도 아닌 그 자리에 서서 1999년은 포크음악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그 오랜 연륜만큼 튼튼한 뿌리를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1990년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댄스음악으로 대표되는 주류와 락으로 대표되는 비주류의 사이에서 포크음악은, 그 주된 대상이었던 70년대의 젊음을 트롯트에게 내주고는 그 화려했던 과거를 접고 있다. ''""""'' 한국의 포크음악은 1968년 명동의 음악카페 '세시봉'에서 통기타만을 들고 무대에 서서, 경쾌한 비트와 발랄한 음색으로 젊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듀오 "트윈 폴리오"에 의해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트윈 폴리오"는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송창식과 윤형주의 듀오로, 그들은 1969년 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