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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 송 창식님을 사랑하는 홈페이지
2004년 12 월호 송창식, 한성숙 부부의 독특한 결혼생활 28년 노래하는 도인 밤 10시. 미사리 카페촌은 아직 한낮이다. 청춘은 갔어도 음악은 늙지 않는 법. 송창식의 ‘푸르른 날’은 여전히 푸르고 시리다. 살포시 감은 눈, 적당히 술에 취한 듯 흥에 겨운 송창식표 얼굴도 그대로다. 소나기 퍼붓듯 쏟아지는 팬들의 박수소리를 뒤로하고 그가 카페 뒤편에 있는 출연자 대기실로 향한다. 밤늦은 시각인데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인터뷰는 야심한 시각에 대기실에서 이뤄졌다. 인터뷰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는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보이차를 기자에게 끊임없이 따라주면서 마셨다. “석 달 전부터 마시기 시작했어요. 이 차가 잇몸 건강에 좋대요. 요새 제가 잇몸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있거든요. 잇몸..
[70년대부터 현대까지의 통키타 문화 흐름] 대학생활의 상징 ― 통키타 통키타란 무엇일까? 여섯줄의 악기.. 올림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는 소리.. 포크음악.. 김광석.. 대학문화... 통키타라하면 많은것을 떠올리게 된다. 기타의 역사는 한마디로 클래식 기타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통키타 또는 일렉기타(Electric guitar)는 시대의 부산물이며 특히 서민들 즉 대중들이 노래와 춤을 즐길 때 흥겹게 해주기위한 반주악기로써 발전해 왔기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통키타(Acoustic guitar)와 일렉기타(Electric guitar)가 훌륭한 연주가들과 작곡가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연주용 악기로 발전하였다. 기타는 크게 머리(Head), 목(Neck), 몸통(Body)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타..
-쌩쌩토크- “나이 먹었네 하며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친구들 보면 참 안타까워”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포크 빅3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세명이 모이면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한다.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식사를 하며 나눈 이들 3명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윤형주(이하 윤) : 우리 직접 만난 건 오래간만이지 아마. 전화는 해도 자주 만나지도 못해. 워낙 창식이의 생활패턴이 남달라서. 송창식(이하 송) : 그래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있어. 절대 바꾸지 못해(웃음). 이젠 늙어서 그런지 사진촬영도 참 힘드네. 정말. 김세환(이하 김) : 우리도, 팬들도 다 나이가 들었지. 아줌마가 뭐야. 손주 본 할머니들도..
[99 포크 페스티벌]다시 듣는 "통기타 30년" 포크송이 추억의 노래로 되돌아 온다. 3선개헌(69년)과 10월유신(72년)으로 숨막히던 70년대. 젊은이들은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로‘무장’하고 분노와 설움,희망과 낭만을 섞어 노래를 불렀다. 그게 포크 송(Folk Song)이다. 포크송이 이 땅에 소개되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 그들은 ‘물 좀 주소(한대수)’하며 자유를 외쳤고 긴밤 지샌 ‘아침이슬(김민기)’에 영롱한 희망을 그렸다. 또 한켠에서는 탄압을 비켜가느라 ‘하얀 손수건(트윈폴리오)’을 흔들었다. 동시대 청년이었던 최인호는 이를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다시 뭉쳐 한국포크 3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30주년 기념잔치인 ‘99포크 페스티벌’을 연다. 첫마당으로 ‘낭만의 혁명, ..
가요의 역사 1. 대중 가요의 등장 ''''우리나라에 대중가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 '이 풍진 세월'로 잘 알려진 '희망가'로 소개된 곡이 음반화 되면서 부터이다. ''그후, 영화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의 를 거쳐,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한을 잘 표현한 이난영의 과1930, 40년대 남인수의 ,등이 우리 대중가요사의 초창기 곡들이라고 할 수 있다. ''2. '포크'의 시대 - 1970년대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 폴리오'를 결성한 송창식과 1970년 '아침 이슬'로 데뷔한 양희은은 1970년대 포크 음악의 대표적인 가수들이다. ''이 당시 노래들을 비평하자면, '트윈 폴리오'라는 그룹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우리의 노래가 아닌 외국 노래의 번안곡이 우리 포크 음악의 대부분이..
긴급조치, 광주 그리고 청년문화 대학가와 다운타운의 음학홀을 거점으로 융기했던 통기타와 밴드의 사운드는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을 밀어내고 마침내 주류의 권좌를 차지했다. 청년의 문화가 드디어 미8군 출신의 스탠더드 팝과 트로트로 대변되는 어른의 문화를 굴복시킨 것이다. 그것은 비단 대중음악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이른바 4.19 세대의 작가와 비평가들은 보수적인 문단을 재편했고 최인호는 으로 새로운 세대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이 신조류의 극점은 1975년 하길종 감독의 영화 이다. 종래의 톱스타를 전혀 고용하지 않은 이 박재당한 젊음의 여화는 송창식이 담당한 영화 주제가 와 으로 하여금 차트 넘버원의 행진을 거듭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1차 혁명의..
또 다른 언더그라운드, 포크 주류도 반주류도 아닌 그 자리에 서서 1999년은 포크음악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그 오랜 연륜만큼 튼튼한 뿌리를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1990년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댄스음악으로 대표되는 주류와 락으로 대표되는 비주류의 사이에서 포크음악은, 그 주된 대상이었던 70년대의 젊음을 트롯트에게 내주고는 그 화려했던 과거를 접고 있다. ''""""'' 한국의 포크음악은 1968년 명동의 음악카페 '세시봉'에서 통기타만을 들고 무대에 서서, 경쾌한 비트와 발랄한 음색으로 젊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듀오 "트윈 폴리오"에 의해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트윈 폴리오"는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송창식과 윤형주의 듀오로, 그들은 1969년 첫 ..
대중가수가 부르는 "가곡의 밤" (1997.03.20) '''초청음악회' 7년만에 재개...클래식가수와 함께 무대 . 한시절 음악계의 화제를 모았던 「초청 시리즈음악회」가 7년만에 재개된다. 장인 이씨가 준비한 시리즈 3탄은 「이건용 노 래의 밤」. 대중가수 -송창식이 클래식가수와 한 무대서 이건용의 창작 가곡을 노래하는 자리다. 4월14일 민회관에서 열리는 이 음악회에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소프라노 송광선, 테너 김영환이 함께 출연한다. 「잃어버린 시심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가 「누가 우리들 가슴에」 (백창우시) 「그대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요」 (도종환시)를 부르고, 송창식이 「십자가」(윤동주시)를 발표한다. 이 시리즈 음악회는 90년(「이경숙 피아노독주회」 호암아트홀), 91년 (「박인수독창회」 예..
명사들의 "기" 수련 (1997.05.06) 기에 심취한 사람 중에는 기업가, 정치인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기 전도사」는 회장. 그룹 경영 원칙이 「패기」다. 최회장은 이를 「일과 싸워 이기는 기백」이라고 해석한다. 10년 전 단학선원에서 1년간 수련을 받은 뒤, 자기에게 알맞은 「심신수련법」을 고안해 부인과 매일 새벽 1시간 가량 기수련을 한다. 사원연수시 호흡법과 기체조를 시키고 있으며, 임원들은 의무적으로 사내에서 기 수련을 하고 있다. 『기를 통해 자기 몸의 아픈 부위를 찾아낼 정도의 단계』라고 비서실 관계자는 말했다. 명예회장은 87년에 직접 단학선원을 찾아 단전호흡 지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단학선원측은 『3개월간 매일 오전6시에 원장이 청운동 정회장 집을 방문해 단전호흡을 가르쳤다』고 밝..
무교동의 어제와 오늘 (1997.06.16) 무교동은 옛부터 주점과 음식점이 많았던 유흥가다. 중부소방서가 있던 자리에서 광교에 이르는 5백여m 무교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펼쳐진 무교동과 다동엔 오락장, 대중음식점, 극장식당, 나이트클럽 들이 빼곡했다. 좁은 도로에 골목길도 많았다. 70년대만 해도 서울을 찾은 관광객들이 서울의 밤을 즐기러 찾았 고, 장안의 내로라 하는 멋쟁이들이 호기부리며 드나들던 곳이었다. 다동쪽은 고급집이 많았고, 무교동 쪽은 서민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광교에서 세종로까지 큰 길이 뚫리고, 80년대 들어 도심지 재개발지 구로 지정돼 큰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조영남이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들락거렸던 60년대엔 주변에 큰 건 물이랄 게 거의 없었다. 좁은 골목길에 고..